[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문우와 구말장터를 찾았다. 구말장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오는 덕산의 오일장이다. 한때 진천 오일장보다 더 큰 장으로 흥청거렸다고 회고한다.

덕산은 충북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2019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용몽리 구도심과 혁신도시로 양분되어 있기 때문에 조화로운 발전을 과제로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로 양옆으로 상가들이 늘어선 구도심 시장통으로 들어섰다. 동행한 이가 슬며시 손을 잡아끈다. '나하나 사진관'이다. 허름하다. 내부는 학창 시절에 보았던 사진관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 중‧고등학교 시절, 졸업앨범을 만들기 위해 사진관에서는 학교로 출장을 나와 교정 여기저기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찍곤 했다. 소풍 때나 수학여행 때에도 으레 사진사가 따라붙었다. 특히 졸업식 날은 사진사들의 대목이었다. 평소에는 돈을 아끼느라 함부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졸업하는 날만은 누구나 기념사진 몇 장씩은 찍었으니까. 1974년 남편의 중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목에 꽃다발까지 걸었던 것이 생각난다.

증명사진 속에는 시 한 구절을 같이 넣기도 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 번' 김소월의 시가 등장하는가 하면, 정지용의 '호수'가 들어서기도 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 눈 감을밖에' 단골로 등장하던 시의 구절이다.

40여 년 한자리를 지켜온 이 사진관 역시 1970-80년대가 신바람 나는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지금 시내 도심에서는 포토샵을 통해 실물과 사진이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얼굴 사진을 만들어 놓는다. 첨단 시설에기술을 갖추고 고객을 맞는다. 간판도 사진관보다는 스튜디오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그에 비해 이곳은 '나하나 사진관' 예스러운 간판을 달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추억의 사진 한두 장쯤 건져 올릴 수 있을법한 운치가 느껴진다.

현재, 이곳의 고객은 지역의 어르신들 또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누구나 휴대폰으로 하루에도 수십 장씩 사진을 찍는 이 마당에 사진관에 가서 사진 찍을 일이 무에 그리 있을까 싶었는데 여권이며, 서류에 넣을 증명사진을 종종 찍으러 오기 때문에 내 건물에서는 할 만하단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문우는 텅 비어가는 시장통을 애상에 젖은 눈빛으로 돌아본다. 그 옛날 이웃이 만나 서로 소식을 전하고 정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었는데 사람 발길 뜸한 것이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외국인이 토박이보다 더 많이 활보하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한편, 그들이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는 현실 앞에 망연해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류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숙제가 한 짐이다. 혁신도시와 구도심이 상생하며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묘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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