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많은 사람들은 내(몸) 안에 있는 나(마음)를 잘 모르면서 그냥 시류時流따라 살아가고 있다.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지만, 모른다고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알 필요가 없었으리라. 내 마음 가는대로 내 몸이 따라가며 잘 살고 있는 데, 어떤 마음을 왜 알아야 하는 거지? 몰라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함께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고 일깨워줘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 현자賢者 소크라테스도 자신 안의 자신을 알지 못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음을 한참 후에 깨닫고 그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는 게 병識字憂患이라고 차라리 모르는 게 더 편하고 좋단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한 이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나를 잘 안다고 하는 그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을 모르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지?

내 안의 나는 상대를 보고 말하고 듣는 나와 내 안에 같이 있는 '다른 나'이다. 다른 나는 현상의 나를 지켜주고 이끌어주면서 생사를 같이 하고 있는 나를 말한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영靈/spiri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나와 내 안에 있는 다른 나(心)는 나(身)와 하나(心身)이면서 서로 다른 둘(靈肉)이기도하다. 정말 그럴까?

나를 바라보는 이에게 나는 보이는 나로 잘 비춰지지만 다른 나는 내 속의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어서 나도 찾을 수가 없다. 바로 내 마음이다. 현상現象의 내가 영상靈象인 다른 나를 보지 못해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는데, 어찌 남이 내 안의 나를 알 수 있겠는가? 모르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안다고 하면 그것은 그 안에 있는 그이리라.

평생을 함께한 부부도 자기 삶의 정리단계에 들어서면 ~걸, ~걸, ~걸 하면서 내 안의 나를 모르고 살아온 날들을 아쉬워하며 땅을 치고 통곡痛哭을 한다. 남의 눈에 티는 잘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본 것과 다름 아니리라.

내 안의 나를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해서 그런지 세상에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며 구역질하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으뜸이라고 엄지를 치켜들며 목청 돋우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모르면 척 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도 보통사람의 반열에 오른다는데, 오만방자傲慢放恣한 일탈행동逸脫行動으로 선진국민으로서의 국격이 뚜욱 뚝 떨어지는 안타까운 소리가 요란하단다. 나와 내 안의 내가 소통이 되지 않아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이리라. 어쩌면 좋을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왜 그런 짓을 했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참 바보짓 했네!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내가 양보하고 용서했으면 될 일이었는데. 잠시 멈추고서 심호흡 한 번만 했어도... 내 욕심이 너무 지나쳤나? 내 목숨보다 더 중한 게 뭐였지?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반려가족과 대화하듯, 숲속에서 더불어 노래하듯, 하늘 향해 소망하듯, 꿈속 부모님께 소원하듯, 액자 속 사진 향해 간청하듯, 티 없이 맑고 밝은 아가에게 당부하듯, 케이크의 촛불 향해 두 손 모으듯, 손잡고 연인에게 언약하듯, 절대자에게 기도하듯 서로 소통하며 내 안의 나를 마음 다해 사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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