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개인적으로 이어령 선생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서였다. 이어령 선생의 팬이기도 했던 목사님은 종종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지성에서 영성으로'까지를 설교의 주 소재로 인용하며 시대의 지성에 대한 찬사로 시작해 통찰력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후 대학시절과 최근까지 접했던 이어령 선생의 책은 매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나야말로 젊을 때 저항의 문학이다, 우상의 파괴다, 해서 부수고 무너뜨리는 데 힘을 썼어요. 그런데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김지수의 '자존가들' 중)

갈피를 넘기던 책, 쓰던 컴퓨터 등 일상에 둘러싸여 눈 감고 싶다는 그는 지난 2월 26일 우리 곁을 그렇게 거짓말처럼 떠났다.

그를 추억하기 위해 지난 3월 2일 청주문화원 후원으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서 애도행사가 개최됐다. 지역 예술인들의 추모공연 뿐만 아니라 책 전시도 함께 진행됐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교수님께서는 청주를 '생명문화도시'로 이름지으셨다. (중략) 그 중심에는 이 쌀과 연결된 젓가락을 생각하시게 됐다"며 그를 추억하기도 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연보를 살펴보면 이미 20~30대의 나이에 조선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항신문,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고 하니 그가 왜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지 깨닫고도 남음이다.

'어른'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략 5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다 자란 사람,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결혼한 사람,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런 어른'을 찾기가 힘들다.

이영희 기자는 '어쩌다 어른'이라고 했고, 김난도 교수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했다.

게임에 방해된다고 우는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나이가 어리면 무조건 반말부터 시작하는 몰상식과 무례, '나때는 말이야'라며 치기어린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꼰대, 명예와 직함에 연연하며 노욕(老慾)을 부리는 정치인들까지 어른답지 못한 어른을 목격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 자라 나이가 많고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이 시대의 어른인 이어령 선생의 빈자리는 유독 휑뎅그렁하다.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다시 이어령 선생의 죽음을 떠올린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가장 어른다웠던 그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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