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로 못 만났으니 2년이 넘었다. 동네 이웃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서 수다를 떨던 사이였다.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한 친구여서 항상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외국에서 지내면서 현지인 수준의 언어를 익히고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한 적도 있어 요리도 잘하던 그녀였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은 빛났고 예뻤다. 그런 그녀가 떠났다. 엄마만큼이나 예쁜 두 아이를 남기고. 정말 너무나 갑작스럽게.

곧 다시 만나려니 했다. 코로나 탓만 하며 만남을 미루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했다. SNS에 가끔 그녀가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뜸해져 궁금하던 차였다. 돌이켜 보니 그녀는 씩씩해 보였지만 눈물이 많았다. 그저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지 싶었고, 그저 그 나이에 누구나 겪는 마음고생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슬프다. 가끔 그녀가 울면 나까지 눈물이 나서 어색함에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넘기곤 했었는데.

어느 유명인의 그것보다 충격이 컸다. 그녀의 선택이 믿기지 않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소식을 듣던 날 함께 있던 친구의 후배도 세상을 등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 자리에서 두 명의 소식을 들은 우린 모두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나 흔한 일이란 말인가. 차마 그녀를 조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친구가 확진을 받은 뒤 움직임을 조심하던 차이기도 해서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했다. 굳이 핑계를 만들어 보지 않았다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아서.

그동안 자살은 그저 내 강의의 단골 사례였다. 사회문제를 말할 때 그만한 게 없었고 우리 현장의 빅데이터 활용에 대해서 할 때도 다뤘다. 그만큼 현장에서 접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젠 그저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살하는 이가 많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한 해 동안 14,6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 남성이 10,319명, 여성이 4,317명으로 남성이 두 배가 넘는다. 이 수를 하루 단위로 산정해 보면 매일 40명이 자살하는 셈이고 36분에 1명씩 자살을 한다는 통계가 된다. 그나마 2010년에는 16,853명이었으니 사회적 노력으로 10년이 지난 지금은 2,200명 이상 감소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살 방법은 음독이 가장 많고 가스, 칼 등 날카로운 물질, 농약 등의 순이다. 방법이 무엇이든 가슴 아픈 일이다.

같은 자료에서 정신과 전문의 판단에 따른 자살 기도 요인을 보면 정신과적 증상이 42.8%로 가장 높고 그다음은 대인관계가 25.4%를 차지한다. 금전 손실 6.1%, 신체적 질병이 5.2% 등으로 나타나지만 대인관계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회복지사가 갖춰야 하는 실천기술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대인관계여서, 그래서 더 놀랐다.

우린 사람을 대하는 휴먼서비스 종사자이기 때문에 대인관계는 학문과 실천에서 우선시된다. 그러나 공감은 하되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의도적이고 통제된 정서적 관여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내게도 그것이 습관처럼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 관계에서 그녀에게 좀 더 공감했다면, 한 번 더 그녀 곁에서 함께 울어줬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다면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미 늦은 지금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남은 가족의 안녕과 그녀의 명복을 비는 일뿐. 우연인지 오늘 책장에서 꺼내 읽은 '빵장수 야곱'에서 야곱은 집과 관은 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임을 기억하라고 했다. 내 문을 열어 두어야겠다. 나도 나가보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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