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의식주 중에 밥은 한식의 비율이 훨씬 크고 옷과 집은 양복, 양옥이 비율이 훨씬 크다. 먹는 것은 변하기 쉽지 않고 입는 것과 사는 것은 변하기 쉬운 걸까.

의식주는 같은 문화의 흐름 속에 어우러지는 게 일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의식주는 우리의 일상 생활의 기본 요소들이다.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일상은 돌아갈 수 없다. 옷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고 먹지 않고도 살 수 없다. 집 없어도 원시 상태에서는 적당히 살 수 있었을지라도 지금은 어림없다. 그 의식주의 바탕에서 문화, 예술, 정치, 종교, 과학 등이 피어났다. 그런 것들은 늘 새롭게 거듭나며 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의식주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는 생활의 기초인 의식주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먹는 것에서의 불균형은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에 심각하다.

의식주 중에 아무래도 먹는 것이 우리 몸과 관계가 가장 깊다고 할 수 있다. 먹는 것이 몸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옷이나 집은 간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몸 안에 스며들어 영양을 주고 뼈와 살을 키운다. 옷과 집은 몸의 바깥을 둘러싸며 보호를 한다. 의식주 중에 밥만이 한식의 비율이 훨씬 큰 것엔 그런 이유들도 있어 보인다.

양복이나 양옥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옷 역시 훌륭하며 색깔, 형태, 디자인 등에서 뛰어난 것이 많다. 서양 건축 역시 철근의 사용 등으로 고층빌딩까지 지어낸다. 목재와 흙 위주로 이루어지는 한옥에선 수직으로 높게 쌓아 올리는 건축 기법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서양 건축은 자재, 첨단 공법 등으로 인해 공장, 호텔, 오피스텔, 백화점 등등으로 확장성이 강한 것 역시 특징이다. 토목 역시 유사하게 과학적, 공학적, 재료적 바탕 하에 발전해왔기에 토목과 건축을 아우르는 서양의 기법은 놀라운 데가 많다. 나는 서구식 아파트에서 서구식 옷을 입고 한국식 밥과 국, 반찬을 먹고 산다. 별 문제 없고 편안하며 익숙해 있다. 너무도 익숙해 있어 그러한 사실 자체가 불균형이라는 자각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불균형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그 불균형을 서양식으로든 한국식으로든 한 방향에 맞춰 균형을 이루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 서양식과 한국식이 어우러지는 퓨전 방식은 장점도 풍부하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즐길 자유가 있다. 문제는 이런 불균형이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동의 없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주 문화 전반에 지배적 구조를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외래 문화를 수용할 때 그 수용 여부, 수용 방식, 수용 비율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 전통과 비전통의 관계에 대한 탐구와 사유, 논의 역시 결여되어 있었다. 의식주를 포함한 문화, 문명의 구조에 큰 변화가 올 때 그와 상관관계가 깊은 거주자의 마음, 무의식, 거주자들 간의 관계에 대해 거의 생각조차 없었다. 외래 문화의 수입에서보든 깊은 고찰 없이 떠밀리고 가령 새마을 운동에서 보듯 밀어붙인 일방적, 폭력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이 깊었더라도, 거주민들의 동의에 대한 사유와 배려가 조금이나마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단절, 대체 식의 건조하고 황폐한 구조가 아니라 공존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볼 때 안타깝고 화나는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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