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몸통은 허리선 없이 일자형이다. 삐뚜름한 네모 모양의 머리에 툭 불거진 눈, 뭉툭한 코, 이마에 큰 백호가 인상적인 돌기둥이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수호신인 석불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다. 흔하게 보아 온 불상의 모습과 다르다. 다리가 없으니 기다란 직사각형이거나 돌 막대기 같다. 입술 선은 한껏 웃음을 머금은 듯하다.

세월에 닳아도 탓하지 않는다. 비바람에 쓸려도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평하지 않는다. 화장 안 한 여인같이 수수하다.

선돌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정식 명칭은"순치명석불입상(順治銘石佛立像)," 청주시 용정동의 이정골이라는 동네에 자리한다.

이정골에 사는 지인은 아주 오래전에는 동네에서 돌아가며 정월 대보름 때 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안 지낸 지가 한참이란다. 장마에 지금의 김수녕양궁장 입구까지 떠내려간 선돌을 동네 사람들이 메고 와서 다시 세웠단다.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며 마을 어귀에 다시 세웠을 것이다.

불상은 이정골 초입 논 한가운데 서 있다. 화려하지 않고 순박하게 비바람 맞고 있는 모습은 들에서 늘 농사짓던 아버지다. 짙은 눈썹, 도드라진 눈두덩이 아버지와 겹쳐진다.

중풍으로 한쪽을 못 쓰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혼자 농사를 짓던 어머니가 낙상하셔서 몸져누워 계실 때 시골집으로 갔다. 밥상을 차려드리고 청소를 하는 내게 어머니는 콩밭에 풀이 많다며 넋두리를 하신다.

터벅터벅 도착한 콩밭은 꽤 컸다. 온 생을 일궈온 터전이라 곳곳에 부모님의 세월이 배어있다. 주인이 아픈 걸 아는지 잡초들이 제 세상 만난 듯 무성하게 자라있다. 밭고랑은 왜 그리 길고 먼지, 고랑마다 풀 뽑는 속도가 늦고 끝마칠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세상에는 힘 안 드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흙 묻은 손으로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다 보니 얼굴이며 옷은 흙투성이다.

일이 힘들어 못 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주저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밭고랑을 걸어오신다. 밭에까지 내 발걸음으로 십 분인데, 몸 성하실 때 수천 번을 오갔을 길을 얼마만큼 걸려 걸어오셨을까. 아버지는 땀범벅인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주머니에서 빵 한 개와 두유를 꺼내 주셨다. 이제껏 힘들어서 몸부림치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애써 웃으며 받았다.

편안한 미소를 띤 선돌을 보니 아버지는 호탕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보신 적은 있었을까 싶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묵묵히 일만 하셨다. 가끔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선돌 안내판에는 얼굴에 잇달아 두 팔을 나타냈고 두 손을 모아 턱 밑에 괴고 있단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장승의 팔을 찾기가 힘들다. 배 아래로는 조선 효종 3년(1652년)에 세웠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단다. 사찰의 불상보다는 마을 수호신의 기능을 겸하는 민간의 불상으로 여겨진단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오랜 세월 들판에서 비바람 맞아가며 견뎌 온 세월. 선돌은 세월의 강을 건너오는 동안 아버지 같은 분들이 태어나고 자라 농사짓고 늙어가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을 테다.

선돌 장승이 논 가운데서 순박한 미소로 마을을 수호한다. 마치 아버지의 모습만 같다. 아버지는 고향 선산에서 자식들이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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