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거실 창가에 있는 원목 흔들의자는 좋은 풍경이 되는 가구다. 오래전에 여러 곳을 다니며 샀던 희열은 잠깐, 남향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자 커버 색이 변해서 두 번이나 바꾸어 놓는 동안에도 흔들의자에 앉아 쉬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생각으로 이다음 손자가 생기면 안락한 의자로 쓰이리라, 행복한 시간을 그려보고는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흔들의자에 내가 오래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해 거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밖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 흔들의자였다. 그곳에 앉아 무심천 보며 물 멍하고 우암산 보며 산 멍하고 질주하는 자동차들 보며 같이 달렸다.

아파트 울타리 곁에 구불구불한 흙길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오가면서 길이 되었고 길을 보호하며 밭을 일구어 농로가 되었다. 개발지역이 되면서 주변 밭은 모두 묵정밭으로 변했지만 흙길은 단단히 제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비가 내리면 물웅덩이도 만들고 진흙으로 변하지만 길가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가끔 흙길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흙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지만 걸어본 적은 없다. 그냥 바라보고 느끼면서 지나간 시간 길 하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의자의 편안함에 빠진다.

아버님은 손 솜씨가 좋으셨다. 아이가 어렸을 적, 집에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의자를 만들어주셨다. 일부는 썩은 나뭇결이 보이고 부분마다 나무 재질이 달라서 만족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다듬지 않아 투박하고 예쁘지 않았지만 손자 사랑을 담은 아버님 마음 이어서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몇 번 사용하다가 이웃집 사람에게 주었다. 얼마 후 그 사람도 의자를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의자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도 내어 줄 때는 같은 생각이었지만 남의 손에서 버려졌을 때는 묘한 배신감이 생겼다. 의자가 가볍게 버려진 허탈감과 아버님의 정성을 귀하게 받지 못한 후회는 오랫동안 괴롭혔다.

우연히 소품 가게를 지나다가 버려진 의자와 비슷한 나무 의자를 발견했다. 이젠 훌쩍 커버린 아이가 그 의자에 앉지는 못하지만 내 집에 들이는 것으로 잘못을 용서받고 싶었다. 의자 또한 누군가의 손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졌음을 알기에 지금까지 곁에 두고 있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를 소개할 때 삼행시로 한다. 이름'의'에서 의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의자인지는 정해놓지 못했다. 공원에 놓인 의자도 좋고, 골목길 허름한 의자도 괜찮고, 병원 복도 의자라도 좋다. 놓이는 곳에 따라 의자는 의미가 다르다. 의자가 필요한 사람에게 편안한 휴식이 된다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의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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