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며칠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인가. 한동안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우울한 미세먼지를 봄바람이 한 방에 밀어낸 어느 날 오후. 거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맑은 하늘을 실내에서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밖으로 나갔다.

연둣빛 새싹이 올라오는 길을 준비하듯 겨우내 지친 나무에 매달려 있는 먼지를 털어내는 봄바람이 아직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대나무도 소나무도 벌거벗은 나무들도 봄을 알리는 거센 바람에 정신없이 휘둘리는데 파란 하늘은 미동도 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면 초행길임이 분명한데 어디선가 본 듯하기도 하고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은 와 본 것처럼 착각이 드는 장소가 가끔 있다.

영업을 접은 지 오래 되었다는 무언의 암시를 주듯 내팽개쳐진 낯설지 않은 카페 간판 앞에 멈춰 섰다. 한참 기억을 더듬다 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는 매사 손익계산서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내 기준에 상대가 미치지 못하면 따지고 가르치려 드는 공격적인 성격이 주변 사람들을 매우 피곤하게 하였다. 유난히 적극적인 성격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그녀. 늘 외롭다고 말하던 그녀와 몇 해 전 이 카페에서 차를 마셨던 기억이 났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지속되는 경우가 생길 때 나는 몇 번이고 생각해 본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끊었을 때 내가 많이 아플 것 같으면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참지만 그다지 서운하지 않을 것 같으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쿨하게 끊어내리라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특별히 서로 선택하거나 선택되어 상당한 세월 신뢰를 쌓으며 희로애락을 공유해 온 선(善)의 관계에선 생각처럼 쉽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게 다가온 인연들 중에는 지금까지 지속되는 만남도 있지만 일부러 기억해 내야만 알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긴 사람들 중에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더러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관계도 있는데 그녀는 내게 어떤 존재였을까.

한동안 많이 아파했던 시간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고 의지가 된 우정의 깊이에 돌이 던져졌을 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상황들을 속수무책 지켜보아야만 했던 시간. 처절하게 아파하며 끙끙 앓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한 말이 지금까지 힘이 되고 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 사람과의 인연에 유효기간이 다 된 것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치 예방주사를 맞은 듯 그 뒤로 만남과 이별에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멀어졌던 사람과 다시 이어지게 된다면 그건 아직 그 사람과의 인연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에는 웃음이 나왔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기준에 따라서는 관계성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완전히 틀어지기도 한다. 나에게 적용할 기준은 엄격하게 하고 상대에게는 관대함으로 너그럽고 유연하게 대할 때 관계가 호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유효기간을 늘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넣을 방부제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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