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큰일은 큰일대로, 사소한 일은 사소한 대로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혼란과 갈등을 일으킨다. 어떤 선택이 후회 없는 최선의 길일까를 고민하며 마음은 요동친다.

일평생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갈등의 연속,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일이 우리 인생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고민과 걱정, 혼란, 불평, 불만 없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쭉 이어가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예상 밖의 일을 겪거나 불편한 일을 맞이하거나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삶,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라면 바람일 것이다.

그런 마을이 있다.

철저한 계획 아래 출산의 수는 제한되고 누구나 똑같은 기초가정의 모습으로 어느 가족이나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형태의 모습을 갖는다. 결혼의 배우자도 마을의 원로들이 가장 적절한 조합으로 맺어주며 그들의 결합은 언제나 성공적이며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에 따르는 갈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있을 수 없는 완전한 사회를 이루며 산다. 선택에 따른 분란의 소지는 모두 제거되어 있다.

아이가 성장해 열두 살이 되면 직업이 정해지게 되는데 마을의 원로들이 그 아이의 학교 성적과 적성, 성향 등 모든 것을 확인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직업을 정해준다. 열두 살 이후로부터는 직업에 맞는 공부와 실습 등을 꾸준히 하게 되고 모두가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는 한 치의 오차 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아기만을 출산하는 산모라는 직업도 존재한다. 성적 욕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되면 알약이 지급되며 그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그 약을 복용한다. 마치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기분이 우울해질 때면 먹는 '소마'라는 약처럼.

마을은 늘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이란 것은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인간적 감정에 따르는 어떤 종류의 고통도 없는 편안한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한다.

그 마을 사람들은 고통, 배고픔이란 단어를 모른다. 상대적으로 사랑, 행복이라는 단어도 당연히 모른다. 색깔도 없고, 음악도 없다. 빨간 사과도, 초록 이파리도 모두 무채색이다. 오직 안전과 평화만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전쟁이라든지 흑사병과 같은 고통스런 기억은 오직 기억보유자와 기억을 전달받는 자만이 갖는다.

최근에 읽었던 뉴베리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 작가 로이스 로리가 쓴 미래소설 <기억 전달자(The Giver)>라는 책의 내용이다.

12살에 기억 보유자라는 최고의 직위를 받은 주인공 조너스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고 평화롭고 안전하지만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직위해제' 라는 의식을 통해 비인간적 사회체제를 깨닫게 되며 그 안전지대를 힘들게 탈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모든 고통스런 기억과 따뜻한 사랑의 기억을 혼자만이 보유하던 조너스가 그 마을에서 탈출하게 되면 다시 그 마을은 고통스런 기억과 또 행복하고 달콤한 기억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노랗게 산수유가 피어난다. 남녘에는 매화가 만발하고 벚꽃도 목련도 제각각의 색깔과 향기로 피어날 것이다. 동토(凍土)를 이겨낸 보리들이 새파랗게 물결치는 모습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계절은 순환되고 우리들의 삶도 고통과 기쁨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인생이란 바다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의 '늘 같음 상태'를 꿈꾸어보지만 고통 속에서도 행복이 깃들어 있어 또 인생은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위안하며 맞이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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