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이틀에 걸친 수술 끝에 65살 되는 생일에 39년간 써온 안경을 벗었다. 감사하고 신기하다. 대학 시절 나빠진 눈 때문에 스물여섯 살 때부터 근시 안경을 썼다. 그 후 오십 대 중반에 노안이 와서 할 수 없이 다초점렌즈로 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운전·등산 등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책을 읽을 때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읽을 때는 안경을 벗어야 했다. 골프·스키 등 운동을 할 때는 다시 근시 안경을 써야 했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중간에 해당하는 컴퓨터 안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세 가지 다른 렌즈로 된 안경을 사용했다. 뿐만이 아니다. 등산이나 운전을 위한 선글라스는 다초점으로, 운동을 위한 선글라스는 근시 안경으로 해야 하니, 사실상 다섯 가지 안경을 사용해 온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맨눈으로 책 읽는 것도 불편했다. 동료의 권유로 드디어 돋보기안경까지 장만했으니, 안경에 치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안경을 써도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수년 전 안과에서 백내장이 있긴 해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진전이 많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3년에 걸친 코로나로 인해 늘 마스크를 껴야 하니,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 서림 방지를 표방하는 안경 세제나 닦개를 사용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정말 불편했다. 이런 고민을 아는 주위의 선배·친구 중 백내장 및 노안 수술을 한 이들이, 편하다며 권했다. 1~2년 전부터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드디어 이번 생일을 맞아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결심하고 나니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부분이어서 걱정됐다. 몇 주 전에 미리 수십 차례의 검안과 처방을 받아, 이틀 걸려 진행됐다. 다른 수술은 전신마취나 부분마취를 하고 눈 감고 있으면 되는데, 이 건 부분마취에 눈 뜨고 받아야 하니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첫날은 비교적 짧게 끝났지만, 다음 날은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려 고통스러웠다. 기도하면서 견뎠다. 수술은 잘 되었다. 이틀 동안 착용하던 안대를 벗고 머물던 호텔 창을 열고 먼 데를 바라보니, 선명하게 잘 보였다. 지난 2년여 동안 새벽예배 시간은 물론, 법원을 오갈 때도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벗고 다니던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때도 많았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

39년간 써오던 안경 없이도 잘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몸을 잘 유지·관리해서 소명의 완성을 위해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첫째, 눈이 좋아졌지만, 오히려 많이 보려 하지 않겠다. 많이 보는 것보다 깊이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더 적게 보고 더 많이 듣겠다. 둘째,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살겠다. 육십여 년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사물과 세상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내 나름으로는 바르게 본다고 하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다. 뉘우친다.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르게 보고 살겠다. 셋째, 사물의 현상만을 보지 않고 그 속에 있는 근본을 보겠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것이 미칠 영향까지, 확대하자면 역사를 통찰하는 시력을 갖도록 하겠다. 넷째, 하나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분이 좋아하실 일만 하겠다. 나는 법을 도구로 해서 이웃을 섬기라는 소명을 받은 자다. 어떻게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궁구(窮究)하며 살려 했지만, 제대로 못 했다. 타인의 재물, 명예, 출세를 부러워하며 산 날이 많다. 회개한다. 내 삶을 하나님 시선에 맞추면서 소명의 완성을 위해 살겠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이틀간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성경을 열어 시편 37편을 읽기 시작한 일이다. 그날 아침 식사 후 처음으로 한 외출은, 몇 년간 찾지 못한 포천의 장모님 묘소 성묘(省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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