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봄비가 한두 차례 내리더니 화분의 온기가 달라진 것 같다. 비가 내린 덕분인가. 겨우내 단단해진 흙을 뚫고 올라온 눈부신 생명이 돋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새싹이 전부는 아니다. 싹은 보이지 않으나 도도록하게 솟은 흙, 그 흐트러진 공간도 생명이 돋을 자리이다. 뭇 생명은 이렇듯 무언가를 깨트리며 태어난다. 감성이 미미한 인간은 그곳을 여느 날처럼 맥없이 스치고 흘러가리라. 하늘정원을 무시로 드나들다 흙을 뚫고 꼬물꼬물 오른 무수한 몸짓을 발견하고 찬란한 봄을 바라본다.

계절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봄'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미 눈앞에 보이는 앞산의 나무색도 숲의 빛깔도 희끄무레하다. 나무들의 수관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는 증거이다. 허공의 무게를 뚫고 가지를 뻗은 홍매의 우듬지도 붉다. 마른 가지처럼 보이던 가침박달나무도 줄기마다 꽃봉오리가 돋고 있다. 이즈음 모란도 머슴애 까까머리처럼 솟은 붉은 싹이 가지 끝에 까슬하다. 모란 화분을 거닐 때마다 '올해는 꽃의 여왕인 모란꽃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을 왼 덕분일까. 이태를 이파리만 무성히 키우고, 꽃을 보여주지 않던 모란이 드디어 꽃대를 물었다. 하늘정원에 꽃의 여왕이 나섰으니 머지않아 꽃 잔치가 벌어지리라.

모든 일에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다. 어찌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질까.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여 실수할 수도 있고, 자연이 오지랖 넓게 비를 자주 뿌려 식물을 웃자라게도 한다. 아파트에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아니라도, 햇볕과 바람, 습도 등이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 환경에 어울리는 식물을 골라야 꽃을 오래 볼 수 있다. 새싹의 몸짓을 바라보며 식물의 탐구 과정은 가없이 이어진다.

새싹, 그 거룩한 몸짓처럼 인상적인 분이 우리 고장에 머문다. 주말의 시간을 이용하여 야산에 48년간 나무를 심어 홀로 삼림욕장을 가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숲을 이루기까지는 그의 숨은 노고와 땀, 나무를 향한 지극한 사랑 덕분이다. 또한, 인간의 선한 마음을 읽는 신의 영역, 무위자연이 함께하니 무엇이 부족하랴. 숲에 드니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삼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속에 감탄사가 절로 흐를 정도이다. 산길에 떨어진 낙엽과 솔가지는 융단처럼 느껴지고 하늘을 향하여 죽죽 뻗은 낙엽송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심신이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다.

일상에서 우주의 진리를 길어 올리는, 거룩한 행위를 하는 분은 세상의 영원한 새싹이다. 많은 사람에게 도타운 생기를 주니 새싹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삶에 싱그러운 새싹이 많이 돋아나기를 원한다. 싹의 형상은 달라도 일상의 곳곳에 새싹들이 돋는다면, 삶터의 공기도 달라지리라. 그리하여 인간의 심상을 너그럽게 하여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유지된다면 바랄 것이 없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보랏빛 깽깽이풀꽃이 사랑스럽다. 새싹은, 꽃은, 이렇듯 봄바람에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며 피어나는가. 꽃줄기는 흔들리며 존재감 없는 봄바람의 실체를 드러낸다. 새싹들의 거룩한 몸짓은 인간의 본성을 뒤흔든다. 꽃나무를 키우는 여유를 부리거나 '남녘에 매화가 피었다느니, 신록이 부른다느니' 봄바람 수다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