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얼마 전 우리 집 발코니에 있는 란타나 잎이 한낮의 땡볕을 쬐인 깻잎처럼 시들해졌다. 다급하게 물을 준 후 잠시 뒤에 시들했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생기를 되찾았다. 란타나는 수분 부족으로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잎의 시들해짐으로 절박하게 드러냈다. 란타나의 잎이 시들해져있던 모습은 생존의 아우성이었고 분투였다. 란타나는 수분이 부족한 상태를 본능적이고 노골적으로 신호를 보낸 덕분에 고사의 고비를 넘겼다.

사람은 삶의 고단함과 관계의 갈등에서 겪게 되는 불안함과 고통을 감정으로 표현한다. 관계는 심리적인 욕구의 상호작용이고, 심리적인 욕구의 핵심은 감정이다. 관계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주고받으며 감정의 이해 폭과 공감의 영역을 넓혀가는 심리적인 역동이 작동한다. 누군가와 속을 터놓고 지낸다는 것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손해를 보거나 공격을 당하지 않을 만큼 정서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관계라는 증거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사는지의 여부는 유년기에 부모와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아무리 하찮은 경험이라도 반드시 인간의 내면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며, 이 흔적으로 평생에 걸쳐 정신적인 반복과 수정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감정조차도 과거의 경험과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존재다.

감정의 반복강박에 빠져 사는 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A 부부는 감정을 억압하는 정도가 심해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배우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관계로 살아간다. 아내는 남편과 싸우고 나면 삐져 한 달 이상 말을 하지 않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했다. 이럴 때면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고 협박하려는 의도가 느껴져 씁쓸해지고, 존재를 무시당하는 기분까지 들어 분노하게 된다고 했다.

L 부부는 감정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배우자에게 감정을 표현할 때 빈정거리는 말투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아내가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이 '설마', '그럴 리가'라며 불신하고 부정하는 반응을 하는데, 이럴 때마다 아내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당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하다고 했다. L 부부는 서로의 존재를 무시까지 하지는 않지만 존재를 존중하지도 않는 미성숙한 관계로 살아간다.

C 부부는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시키지 않고 날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간다. 이들 부부는 배우자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감정까지 이해해주고 수용해주는 관계로 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작정 화를 폭발시키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키지만 분노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관계를 건강하게 해준다.

H 부부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배우자의 감정을 거울처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관계로 살아간다. 이들 부부는 배우자를 통제, 무시, 미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율, 존중,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서로의 존재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교감하며 대등한 관계로 살아간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감정을 억압당하며 살았다면 무의식적으로 반복강박이 작동하여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최광현 교수는 "나이테가 나무의 기록인 것처럼, 인간의 무의식은 그동안 살아온 감정과 욕망에 대한 기록이다. 무의식속에 억압된 감정과 욕망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밖으로 나와서 제멋대로 군다. 그럴 때 그 사람은 불안을 느끼고, 대인관계에서 또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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