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딸애의 봄 소풍 일기
95년 딸애의 봄 소풍 일기
  • 중부매일
  • 승인 2022.04.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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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엊저녁 잔뜩 찌푸린 날씨는 모처럼 고등학교에 들어와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소풍에 대한 나의 기대를 불안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날씨가 화창하기를 빌고 빈 탓인지 아침 하늘은 결코 무심하지 않았다.

그저 시멘트 숲속에서 온종일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다시 학원으로 이어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생활이 내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겪는 일상일 것이다.

오늘 하루 들뜬 이 기분이 정말 상큼하게 마무리 됐으면 하는 건 비단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 같다.

운 좋게도 평소 서먹했던 선생님과 함께 한 버스에서 교과에 대한 내 부족한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뜻밖에도 긍정적이셨고 미소를 지으시며 답변을 해 주셔서 몹시 기뻤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산과 들은 온통 연록의 잎들이 생명력을 자랑하며 다투듯 돋아나고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일손을 오가며 지켜볼 수도 있었다.

누가 말했던가? 청소년은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고

또 청소년의 눈을 보면 그 나라의 장래를 짐작할 수 있다고

문경새재! 이 고개는 예부터 전략적인 요새일 뿐만 아니라 영남 선비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3 관문부터 시작된 산행은 그저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는 우리들의 소란스러움으로 계곡을 떠안고 있었다.

"그 옛날 바보 온달이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조령깊은 계곡 느릅나무 옆에서 살았대. 그러니 거기가 어딜지 잘 살펴보고 오렴."

하신 엄마 말씀이 생각이 나서 암만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아도 그럴싸한 집터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긴, 워낙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정말 사람의 흔적이 머물지 않은 곳은 자연 그대로였다. 어느 시인의 "설해목"이란 제목의 시 내용을 보면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다고 했다.

폭설에 눈을 잔뜩 떠 이고 전체 나무줄기를 지키기 위하여 곁가지를 스스로 잘라낸다는 대목에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사람이 배워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우리는 항시 선택의 연속 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따듯한 가슴을 지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기술을 익히는 것 같다.

1년에 한두 번 소풍 때만이 가질 수 있는 짧은 행복감이 자연 학습이나 현장을 통한 산 교육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껏 이어져 온 모든 교육이 똑같은 방법을 통해 학습되고 훈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학생들 나름대로 특성과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서 최대한 보장하고 계발시켜 주는 것이 진정한 21세기 교육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늘은 맑고 우리 마음도 푸르다. 모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었던 "왕건" 세트장이 개울 건너 다가온다.

아직도 손목이 시리도록 맑게 흐르는 앞 개울은 그냥 떠 마셔도 괜찮을 만큼 깨끗하다.

이런 1급 수를 공해와 폐수로 오염시키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며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폐해일 것이다. 자연환경을 무시하다가는 언젠가 그 재앙이

고스란히 인간에게 닥쳐온다고 하니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도 소중히 아끼고 써야 함을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오늘 소풍을 와서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자연 속에 나와 걷고 심호흡을 해 보니 학교에서보다 생각하는 면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진 듯하다.

나는 오늘 모든 것이 흡족하였고 드라마 속 철원 황궁의 저 뒷산처럼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하며, 돕고 사는 것이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 피조물로 그분의 뜻을 실현하는 길임을 절실히 실감했다.

-95년 딸이 다니던 충주여고 봄을 다시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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