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요. 배가 고픈 것보다 더 절실한 게 어딨어요. 모든 화가, 예술가들 보세요. 그 사람들도 다 배고플 때 그린 게 최고예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에요. 나는 배고프고 처절해서 한 건데 남들은 잘했다고 하잖아요."

지난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의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이후 배가 고플 일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실함에 대한 확고한 연기철학을 고수했고 마침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021년 문화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금관문화훈장'까지 거머줬다.

지난 4월의 포문은 청주예술제가 열었다. 청주지역 10개 협회의 공연과 전시, 행사는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예술계에 '희망의 신호탄'같은 행사기도 했다.

특히 '문화도시 청주의 예술발전을 위한 세미나'는 여러모로 유의미했다. 충북문화재단이 지난해 하반기 충북 예술인 총 2천명을 표본으로 정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는 '문화도시 청주'뿐만 아니라 충북의 문화예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평균연령 50대이상 73%, 코로나 19이후 연평균 총소득 1천437만원, 개인창작 공간 보유율 34.9%(전국평균 56.3%). 전업예술인 비율은 51.7%였고 겸업의 이유로는 낮은 소득(39.8%), 불규칙한 소득(26.4%), 고용 불안정(11.7%)을 꼽는 충북의 예술인들.

지난 15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뮤지컬 '잭더리퍼' 공연을 관람했다. 객석을 가득 메우고 마스크 위로 들뜬 모습의 관객들의 모습이 낯설지만 반가웠다. 지난 2009년 초연부터 흥행뮤지컬로 자리매김한 명성답게 N차관람을 인증하는 관객들이 인터미션때 관람평을 쏟아냈다. 그중 유독 귀에 꽂히는 소리들이 있었으니 "아까 앙상블 중 한 명 넘어질 뻔했잖아" "봤어. 치마에 걸려서 넘어질까봐 아찔했다니까."

불이 꺼지고 공연 2부의 막이 올랐다. 주연배우들 뒤로 화음을 넣어주고 기꺼이 조연으로 받쳐주며 배경이 된 앙상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의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무대 뒤에서 흘렸을 그들의 땀과 눈물을 가늠해본다.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생활고를 겪다 예술계를 떠나는 충북의 젊은 예술인들의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이제 6·1 지방선거가 40여일 채 남지 않았다. 차기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을 비롯한 시·군 단체장이 누가 될 것인지 후보로 나선 이들이 공약과 그들의 문화마인드를 면밀히 따져볼 때다. 참신한 정책으로 '문화예술의 힘'을 믿는 리더를 바로 세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살만 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은 백범 김구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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