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유럽의 사회복지 모델의 기저를 이루는 주요 원칙 중에 하나가 '보조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이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예비' 또는 '보조'를 뜻하는 라틴어 'subsidium'에서 유래한다. subsidium은 로마 시대의 군사 용어로서 전방에서 싸우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후방 예비 부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후방 예비 부대는 단순히 전방의 전투 부대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뿐만이 아니라, 전방의 부대가 전투에 불리해지면 예비 부대원 전원이 동참하여 적과 싸우기도 했다. 병력이 늘어 전세가 다시 로마군에게 유리해지면 예비 부대는 다시 전투에서 빠져나와 다른 부대를 도울 준비를 하였다.

이런 특성을 반영한 것이 '보조성의 원리'이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서 '보조성의 원리'를 적용해 본다면, 입주장애인분들을 무조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장해 주는 접근, 공간적 독립에 초점이 맞춰진 '자립'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자립'을 보장해 주는 것이 보조성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입주자 스스로 일상 속에 작은 '도전'을 해 보고, 그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종사자들이 조력자의 역할을 하거나, 입주자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상생활 장애에 개입하는 것이 보조성의 원리를 반영한 서비스 제공이다.

이러한 미시적 차원에서의 적용뿐만이 아니라, 사회복지 현장 안에서 '민간사회복지기관'과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역할도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서비스의 강점을 지닌 민간사회복지시설들은 자신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고, 민간의 영역에서 한계를 느끼는 부분에 있어서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제반사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필요에 따라 직접적 개입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이 상호간의 '신뢰'이다. 사회복지현장에서 농담처럼 사용하는 담당 주무관에 의해 시설 운영이 좌우된다는 '주무관법'이나,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해서 지나친 압력을 행사하는 민간단체들의 모습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신뢰는 형성될 수 없다. 서로의 고유한 역할과 가치를 인정해 주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공동의 지향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러한 지향점을 전제로 서로가 함께 성공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 등을 통해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오미클론 변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서로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저질환과 면역체계가 약한 장애인, 노약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복지시설들의 어려움을 지자체가 공감하고 위로해 주고, 과중한 업무와 현실적 한계에 힘들어 하는 공공기관의 입장을 또한 민간사회복지시설이 이해해 주는 모습을 통해 상호간의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은 무리한 바램이 아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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