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예산 무상 요구" vs "늑장 대응에 최선의 선택"

KAIST 정문.
KAIST 정문.

[중부매일 나인문 기자] KAIST 융합의과학원 세종시 입주가 사실상 물 건너 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그동안 여러 차례 MOU(양해각서)와 MOA(합의각서)를 체결하며 구애의 손을 놓지 못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도시건설청)과 세종시도 난감한 입장에 놓여 있다.

반면, 2020년부터 세종시 집현리(4-2 생활권) 공동캠퍼스에 융합의과학원을 개교하기로 하고, 그해 2월부터 추진 자문단을 꾸려 입주를 준비해왔던 KAIST도 억울하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게다가 KAIST는 충북 오송에 바이오메디컬 캠퍼스 타운을 조성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 그동안 세종 공동캠퍼스타운 조성에 늑장을 부린 행복도시건설청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고, 행복청은 KAIST가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무상으로 가져가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어 자칫 진실공방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AIST로서는 세종에 융합의과학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바이오 연구를 위한 동물실험동이 있어야 하고, 바이오·생명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실험 장비들을 갖출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세종 공동캠퍼스는 일반 강의실 형태로, 연구 목적의 융합의과학원 건립 취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 타운을 조성하는 것도 충북도나 청주시와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확약된 것이 아니어서 "지금 단계에서 뭐라고 말씀 드릴 입장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행복도시건설청도 "KAIST가 세종 공동캠퍼스에 입주해야 하고, 융합의과학원 문제도 완전히 백지화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양 기관의 눈치싸움과 예산부담 주체를 둘러싸고 벌이는 힘겨루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KAIST는 "마냥 기다렸는데, 캠퍼스 유치 공모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충북도에 제안을 수용했다"는 입장이고, 행복도시건설청은 "타 대학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KAIST의 제안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충북도와 청주시가 KAIST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긴 했지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지매입비와 건축물 건립 등에 소요되는 예산 등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충북도가 밝힌 2022년 재정공시에 따르면 충북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29.8%이다. 2021년 25.5%보다 4.3% 올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비슷한 도세를 보이고 있는 여타 광역자치단체 9곳의 평균 재정자립도인 37.5%보다도 7.7%P 적은 실정이다.

재정 운용의 자율성을 나타내는 충북도의 재정자주도 역시 올해 44.27%에 머물러 있다. 충북도의 올해 예산 규모(세입 예산)도 7조23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7조원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이 크기 때문에 자주재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충북도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KAIST의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 조성 지원을 이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벌써부터 6·1 지방선거에서 청주와 오송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이 대두되고 있다.

충북도는 청주시와 함께 10년간 지방채를 발행, LH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무상 양여하고 건축비 등은 국가 정책 반영을 통한 국비 확보 및 민간 복합 개발 등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KAIST만을 위해 충북도의 열악한 재정형편상 그렇게 막대한 재원을 부담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세종시 공동캠퍼스 입주 확정 6개 대학. 세종시 제공
세종시 공동캠퍼스 입주 확정 6개 대학. 세종시 제공

이와 관련, 행복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중앙행정기관 입장에선 세종 공동캠퍼스 입주 대학을 상대로 '공개경쟁 입찰'을 적용할 수밖에 없고, 대학 간 형평성 차원에서 특정대학에만 토지를 무상 공급할 수 없다"며 "당초 MOU·MOA를 통해 약속한 것처럼 KAIST 융합의과학원이 세종 공동캠퍼스에 입주하길 바랄 뿐"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어 "KAIST와 처음 MOU를 맺은 이후 무려 14년여 동안 줄기차게 협상을 벌여왔는데, 돌연 세종시를 패싱(passing)하고 충북으로 급선회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며 "공동캠퍼스에 입주하는 여타 대학을 봐서라도 KAIST가 전향적이고 대승적인 판단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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