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올해는 두 곳에서 특별한 글쓰기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특히 한 곳은 시골 쪽 작은 학교라 흔쾌히 수락했다. 마침 한 학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학교라 설렘 가득이었다.

드디어 수업 첫날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는 전날 조금 일찍 잤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섰다. 모처럼 아침 풍경을 보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데로 잘 가고 있을 때였다. 맞은 편 가까이 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 학교가 없을 것 같았다. 점점 동네가 가까워지는데... 학교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딱 막힌 산인데, 점점 불안해졌다. 일찍 출발은 했지만... 첫 수업을 기다릴 예쁜 친구들 얼굴이 아른거려 마음이 복잡해졌다.

잠시 후 동네에 도착하니 산 위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딱 막힌 산이라 길이 없을 것 같았는데 정말 신기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전에 학교를 가려면 이 산을 넘어 간 듯싶었다. 수업 이후 알았지만 학교까지 가는 강변 옆 쫙 펼쳐진 도로가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시간을 보니 여유가 있었다.

다시 편안해진 마음은 점점 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꼬불꼬불한 작은 길 때문이었다. 차도 한 대도 없고 한적했다. 게다가 풋풋한 봄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져 내가 동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는 길. 게다가 그것도 정겨운 산길. 길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영화나 오래 전 'TV문학관'에서 본 것처럼 정겨웠다. 사실 난 지금도 가끔 예전 방영한 'TV문학관'을 찾아보곤 한다. 그러니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산을 넘어 내려 올 때 분홍 복사꽃이 꽃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있었다. 연둣빛으로 물오른 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연두색을 좋아하는데 이때 풋풋한 연둣빛이 제일 예쁘다. 수채화가 따로 없었다. 온통 소박한 풍경들이 봄빛으로 반짝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올 때는 꼭 한번 도시락을 싸서 오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돗자리 하나를 깔고 김밥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 '죽인다'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죽인다'라는 것이 잔혹하지 않고 아름답게 들릴 것 같았다.

산길을 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길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잘못 들어선 길로 불안하거나 망설이지는 않는지. 오늘 잘못 들어선 길로 처음은 불안했지만 끝까지 가보니 불안함이 아니라 색다른 맛을 맛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또 스쳤다. 혹여 잘못 발을 내딛은 길이라도 한 발 한 발 가다보면 무엇인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어쩜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더 마음을 모을 수 있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인생길은 더 그럴 것 같다.

예전에 어딘 가를 찾아 갈 때 길을 잘 못 간 것 같으면 은근히 불안했다. 그런데 산길을 가면서 그런 불안함 보다는 설렘이 있다는 것을 선물처럼 안았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교정에는 흐드러지게 목련이 환하게 등불을 밝히고, 무지무지 큰 느티나무 몇 그루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담당 선생님께 산길이 정말 좋았다고 얘기하니 그건 오래 전 길이란 걸 알려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소프라노 톤으로 산길 예찬을 했더니 다들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무척 이상하거나 인상적인 듯.

곧 봄 풍경이 짙어질 것이다. 꼭 김밥을 싸서 산자락에 하얗게 눈부신 아카시아 꽃향기도 맡으며 먹고 싶다. 그리고 또 내가 가야할 길을 즐겁게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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