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겨울 날씨치고는 평화로운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손녀랑 기분 좋게 도서관엘 갔다. 올겨울은 손녀 덕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값지게 엮고 있다. 점심도 도서관 건물 내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니 편리하다. 오후 세시 반경 살짝 지루해질 무렵, 때맞춰 손녀도 신호를 보냈다. 집에 갈 채비를 하던 중 자동차 열쇠가 없다. 한참을 헤매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차에 꽂아 두고 왔을까 싶어 주차장에 나왔다가 그만 '쿵' 심장이 무엇과 부딪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 차의 배기통이 하얀 증기를 폭폭 내뿜으며 물방울까지 똑똑 떨어트리고 있다. 시동은 물론 히터조차 끄지 않은 게다. 그것도 종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런 기분인지는 몰랐다. 아주 큰 충격이다. 손녀 앞에서 콩팔칠팔 늘어놓을 수 없어서 조용히 왔지만 저녁도 거르고 누웠다. 내가 원래 야무지지 못하고 허술한 구석이 많은 편이지만 몸도 마음도 강건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였다. 허나 감당하기에 버거운 충격이었다. 세월이 나를 특별히 봐줄 수는 없었나보다.

이런 저런 악몽에 시달리느라 어리마리 아침이 되었다. 마음 다스리기는 산중이 좋기도 하고 이래저래 속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쑥대강이처럼 얽힌 심기를 단 몇 시간에 풀지는 못하더라도 쭉쭉 뻗은 솔버덩이 한가운데서 딴엔 정성들여 마음잡기 기도를 하고 막 일어나는데 반가운 전화다. 대화 중에 속리산이라고 했더니 오겠단다. 마치 구원의 손길 같았다. 청주서 예까지 달려오겠다니 내 마음의 갈등이 텔레파시로 통했나보다. 우리는 이런 인연이다.

쏜살같이 달려온 좋은 사람들과 맛난 점심도 즐거웠고 함박눈을 맞으며 만수리 계곡을 지나 화북 쪽으로 드라이브 하면서 금수강산을 음미했다. 우리는 수다스럽게 떠들 줄은 모르지만 군데군데서 함박눈을 머리에 이고 찰칵찰칵 사진도 찍으며 분위기에 젖다보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잊어버렸다. 화양동 채운암에서 스님과 차 한 잔 나누며 오가는 좋은 말씀들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오히려 값진 날이 되고 있었다. 웃고 떠들어도 오가는 말이 허투루 버릴 언어들이 아닌 사람들이다.

멋진 드라이브를 아쉽게 마칠 무렵 '이뿐 사람은 이뿐 짓만 한다.' 는 옛말처럼 시인 오라버님께 연락해보란다. 저녁 같이하고 싶다는 의견에 좋아서 전화를 했다. 역시 흔쾌히 장소까지 정해주시며 눈발 날리는 해거름에 귀찮다 않으시고 함께 하셨다. 작은 음식점에서 조촐한 저녁식사와 소소하게 오가는 대화가 참 정겹고 따뜻했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했다.

"오늘 하루 참 행복했어요." 진심이었다.

"그려, 그날그날 행복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 그거이 중요한 겨 아주 보기 좋구먼." 하신다. 대접 하려던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대접을 받고 말았다. 언제나 이렇게 즐거움을 받는다. 대접을 해도 즐겁고 받아도 즐거운 인연들이다. 세상 살면서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라 여긴다. 나는 진심으로 '좋은 인연들에게 축복을 주소서' 기도했다.

집으로 오는 길 많은 생각을 했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나는 사람 복이 있어서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혹여 누군가에게 따뜻한 정을 주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던가. 베푸는 일에 더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물질적 배품이 아니라도 좋다. 쉽지 않겠지만 오늘 나를 위해 먼 길 와준 좋은 인연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달려가는 마음가짐부터 다져야겠다. 생각할수록 고맙다.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이 겨운 날이었다.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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