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1세대 아파트, 빛바랜 삶의 터전이 주는 묵직한 울림"

김기성 감독
김기성 감독. / 시네마달 제공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겹벚꽃, 길고양이, 목련, 과일나무, 기와 얹은 2층과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 그리고 철거를 앞둔 아파트 거주민들의 인터뷰.

영화 '봉명주공'은 지난 1983년 12월에 준공된 1세대 주공아파트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동·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 2019년 청주영상위 '씨네마틱#청주' 지원작이자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한국환경부문)과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이에 오는 19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기성 감독에게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촬영과정, 집에 대한 기억, 관객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에 대해 물어봤다. / 편집자

 

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영화 '봉명주공' 포스터. / 시네마달 제공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 청주로 10여년만에 돌아오니 사라지고 변한 것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봉명주공을 접하게 됐는데 지금껏 봐왔던 아파트와 달리 고즈넉한 건물들과 풍경에 매료됐다. 청주 1세대 아파트라는 사실과 곧 사라질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민들은 결혼해서 아이낳아 기르고 시집장가 보낸 세월과 추억을 각자의 방식대로 꺼내놓으며 사라지는 공간에 대해 못내 아쉬워한다.

영화는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아파트 단지의 어수선한 풍경과 주민들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소소한 대화들이 교차 편집되면서 거주지에 대한 의미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생물에 대한 나지막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김기성 감독이 기억하는 집에 대한 기억, 주변환경에 대해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물어봤다. 그는 밤하늘, 별, 담장 그림자, 벼락맞은 나무, 시멘트공장 옆 사택 등을 꼽았다.

영화 봉명주공 비하인드 스틸컷
영화 '봉명주공' 비하인드 스틸컷. / 시네마달 제공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기와집에서 살았고 동네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관찰했다. 별도, 달도 많았고 참 밝았다. 대조적으로 그 빛에 마당 뒤에 드리워진 담장 그림자가 칠흑같이 어둡게 보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블랙홀 같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 한복판에는 벼락맞은 나무도 있었는데 시커멓게 불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누구도 베려고 하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 나무에 얽힌 온갖 미신과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일곱살 때는 아버지가 시멘트회사에 근무하셔서 충북 단양에서 잠깐 살게 됐다. 생각해보면 공장 근처에 있는 사택의 모양이나 단지 풍경이 꼭 '봉명주공'과 닮아있었다. 집집마다 또래 아이들이 많아 하루종일 온 동네를 누비며 마음껏 놀았던 기억이 난다. 1년남짓 살고 청주로 이사오던 날 '108계단'이라 불리던 곳에서 내려오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되고 다시 찾아갔을 땐 대형 컨트리클럽이 들어서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사라진 그 마을을 많이 떠올렸다. "
 

영화 봉명주공 비하인드 스틸컷
영화 '봉명주공' 비하인드 스틸컷. / 시네마달 제공 


김 감독이 유년시절의 기억에 기댄 작업치곤 도시개발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읽혔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개발과 주거환경의 변화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을까.

"나무를 옮겨 심을 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새 땅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이 살아온 삶의 기반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무력화되는 경우를 빈번히 접하게 된다. 집이란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축적되며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봉명주공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주민들은 그들의 사연과 추억이 쌓인 집을 지켜내려 했을 뿐이다. 그들처럼 자신의 주거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과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 감독 2015년 헌책방 프로젝트 '침묵의 서책들'전
김기성 감독 2015년 헌책방 프로젝트 '침묵의 서책들'전. / 김기성 감독 제공

김기성 감독은 청주예고와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를 거쳐 독일 퀄른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지난 2015년 헌책방 프로젝트인 '침묵의 서책들'전시도 개최한 바 있다. 그는 당시에 책을 전부 뒤집어 꽂고 사진으로 공간을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점점 사라져가는 헌책방이란 공간과 함께 세월을 머금고 있는 책을 담아내 주목을 받았다.

김기성 감독
김기성 감독. / 시네마달 제공

오는 19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김기성 감독에게 '봉명 주공'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봉명주공은 주민들이 마을과도 같은 공동체적 생활상을 이어온 곳이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식물이 뿌리내리고 살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곳의 공동체가 해산되고, 삶의 뿌리가 뽑혀나가는 장면들은 그동안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해온 도시 개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으로 부터 멀어져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하는 고층아파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흙을 밟아볼 일 없어지는 도시의 삶에서 영화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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