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관련 자료사진.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관련 자료사진.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A good beginning makes a good ending(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영미권의 속담이다. 정말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정치사는 이에 해당한 적이 별로 없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별 볼일이 없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권력자들이 권력 포획에만 눈멀어 철저한 준비를 외면했거나 권력에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도 그랬고, 새 정부 역시 시작을 보면 용두사미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이 율곡의 혼을 깨우며 탄생했다. "나날이 더 깊이 썩어가는 빈집 같은 이 나라는 지금 나라가 아닙니다." 율곡이 선조에게 상소한 '만언봉사'의 일부다. 박근혜 정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국민은 촛불을 들었다. "이게 나라냐[其國非國]"며 목청을 높였다. 촛불정신의 화신인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으로 인한 혼돈의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탄생했다. 전폭적 지지 속에 시작은 기세등등했다. 청와대 참모진에 민주화 운동 출신, 386세대를 대거 기용했다. 친일과 독재의 수구세력 청산은 물론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등 역동성과 기민성을 보였다.

그러나 몸집 불리기와 좌측 통행을 고집했던 이들의 폐쇄적 태도가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검수완박 법률안 처리를 쪽수로 밀어붙였다. 국회가 여야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며 국정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 시작을 위한 준비가 허술/소홀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실행계획 등 주도면밀하고 용의주도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발묘조장의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조국 사태로 국가통치에 무임승차한 데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정권 교체기에 늘 빚어지는 일이지만, 내각 후보자 인선에 필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급기야 한 후보자는 자진해서 사퇴했다. 그 후임 지명은 오리무중이다. 일부 후보자는 부적절 판정을 받았다.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국무회의 개의 조건인 11명을 맞추기에 애를 먹고 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했다. 대통령 비서관도 검찰 출신이 장악, 검찰공화국이란 오명을 받고 있다.

'시작이 반이다.'란 속담이 있다. 시작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일을 끝마치기는 그리 어렵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단, 좋은 시작이어야만 반을 끝낼 수 있다(Well begun is half done). 기원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여하튼 국민은 새 정부의 끝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농익은 살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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