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밝고 화창한 5월의 하늘은 너무나 눈부시다. 저 초록의 나무를 스쳐 곁을 내어주는 바람의 냄새도 싱그럽다, 당당히 자기만의 색깔을 자랑하던 화려한 4월의 꽃잎은 지고 서서히 5월 초록의 향연 속에 물들어가는 호암지에는 문향회에서 주최하는 시화전이 한창 전시 중이다. 물과 꽃과 바람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호암지는 충주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휴식처이자 산책로이기도 하다.

매년 가을에나 열리는 문향회 시화전이 올해는 가정의 달인 5월 어린이날 호암지에서 개막식이 있었다. '시민과 함께하는 호숫가 시화전'은 찬란한 5월의 햇살 아래 권윤서, 김민경 두 어린이들이 문향 회원 남상희 시인의 '물감'을 낭독하면서 문을 열었다.

필자가 사무국장으로 몸담고 있는 문향회는 1991년 20명의 여성회원으로 창립한, 충주시의 여성 문학단체다. 현재는 32명의 회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시와 수필과 동화와 소설로 지역 문화예술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회원자격을 등단한 자 또는 공모전 및 백일장 수상자로 정하고 있으며 매년 회원들의 수필집과 시집 발간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문향 전국 여성공모전'은 매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고 있는 주요 행사 중의 하나인데 올해 공모 마감일은 8월 31일까지이고, 이번 시화전은 6월 17일까지 전시 중이다. 아름다운 시화 60편이 호숫가를 걷는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어 문향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살다 보면 백 마디의 말보다 한 편의 시가 절실한 순간이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참 오랫동안 슬프고 우울했다. 혼자 있어도 슬펐고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기쁘지 않았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달이 밝으면 밝은 대로 마음에서는 온통 시빗거리였다.

내 어머니는 안 계신데 변한 것 없이 흘러가는 세상이 얄미웠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깊은 말 '엄마'를 부를 수 없는 고아가 된 것도 서러웠다.

그 서러움을 잠시나마 잊고 가만히 마음을 다독이던 시가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이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단 5분만이라도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시인의 가슴 절절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내게 스며들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아버지를 그리울 때는 어머니 앞에서 이 시를 흥얼거리곤 했다.

'비비추 고 여린 잎이 우주를 들어 올리는 날 왜 하필 아버지가 떠오를까 내 나이 여덟 살, 어린 처자(妻子) 남겨두고 먼길 떠난 아버지 잊고 살았는데 잊으려 애썼는데'

안제식의 '아버지의 하늘' 일부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오늘도 호암지에서는 싱그러운 오월의 봄날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건넨다. 호숫가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와 바람의 숨결도 무궁한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의 '오월' 속에서 5월은 지금 가고 있고, 나도 깊숙이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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