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혁명'
'동학 혁명'
  • 중부매일
  • 승인 2022.05.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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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도석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감사

단장(斷腸)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직 그 고통의 맛을 모른다. 그러나 그 고통을 해마다 겪는 이들이 있다.

1980년 광주에서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1980년의 부모들만 그러했겠는가. 1894년 공주 우금티에서 죽은 수만의 동학군 부모들은 또 어떠하였겠는가. 잊고 지내다가도 다시 5월이 되면 내 고통처럼 떠오른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자본주의는 보다 넓은 상품 판매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찾아 지구상 마지막 남은 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탐욕스런 아가리 앞에 놓인 조선과 그 조선에서 민중의 심장에 빨대 꽂고 있는 양반 계급, 그리고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이중고를 겪고 있던 조선민중의 질곡 그 상황은 순하게 노예처럼 살다가 굶어 죽으나 저항하다 맞아 죽으나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생산기반이 농촌의 토지가 거의 전부인 상황에서 농산물이라는 목표물을 두고 대치하는 계급의 대립 속에서 가혹한 납세의 부담 즉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계급모순은 마른 풀 섶에 기름이 부어진 상황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이 아니어도 이미 조선민중은 봉기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있었다. 이웃과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겠지만, 굶지만 않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시작 했겠지만 싸움을 통해 그들의 이상(理想)은 진화되었다. 외세를 배척하고자 하는 자주성과 계급을 타파하고자 하는 자유와 평등사상까지도 함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 아무리 높다 해도 싸움에서는 신식무기가 승패를 결정한다. 결국 그들은 신식무기 앞에서 민주주의의 열망이 꺾인 채 목숨도 잃고 살아남은 이들과 부모 및 후손들은 폭도로 숨죽여 살아야했다.

역사는 전진한다. 중간 중간에 반동의 시기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해방 세상을 향해 거대한 수레바퀴는 굴러간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청동기시대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부터 계급이 발생하고 고대 노예제를 거쳐 중세 농노제로 한걸음 진일보하였고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까지 굴러왔다. 물론 저절로 굴러 온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이 수레바퀴를 미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같아 보이지만 자본을 가진 소수가 자본이 없는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이다.

마르크스는 예언하기를 자본주의 체제는 자기모순으로 인해 쉽게 붕괴되리라고 했지만 150여년이 지난 지금 사회주의 체제가 힘이 풀렸지 자본주의는 모습을 조금씩 변화시키며 건재하고 있다. 난 마르크스를 깊이 연구하지 못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인간의 욕망을 도덕심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낙관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 인간의 욕망을 이기는 것은 이 세상 어떤 것도 없다. 만약 그런 사례가 있다면 범위 면에서 좁거나 시간적 측면에서 일시적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다. 외세까지 간섭하는 분단국가이다. 이런 대한민국 사회는 계급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중층의 욕망이 존재하고 그 욕망을 차지한 쪽은 빼앗기지 않으려, 욕망 근처에도 있지 못하는 세력은 욕망을 쫓아 사활을 건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다른 해석이 존재하고 개념조차도 혼란스럽다. 동학농민전쟁을 지배계급은 아직도 동학난(東學亂)이라 부른다.

동학농민전쟁이 진압 된 후에도 피의 학살이 있었고 철저히 패배한 민중은 지배계급의 횡포를 단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공연히 그 지배자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아직도 발호하고 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민중은 크게 바라지 않는다, 내 배부르고 자식들 키우기 가능하면 큰 불만 없이 살아간다. 그래서 개, 돼지라고 빈정거림 받는지는 몰라도 자기가 생산한 만큼 자기 것만 확보되면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소박함조차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는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김도석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감사
김도석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감사

갑오년의 동학농민전쟁은 단순한 패배의 기억이 아니다. 역사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는 거대한 맥박이다. 동학농민전쟁은 일제치하에서 독립전쟁을 낳았고 이어 419혁명을 낳았으며,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되 살아 났고 다시 1987년 6월 항쟁으로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으로 일단락되는 성공의 대하드라마를 우리 민중의 DNA에 깊이 심었고 앞으로도 민중의 심장을 울리는 고동으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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