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형사 고소당했다. 이로써 나는 변호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소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고소가 있으면 경찰은 기계적으로 입건하고 그 순간 피고소인은 피의자 신분이 된다. 절차에 따라 나는 수사대상이 되었다.

흔히들 '변호사는 교도소 담장을 밟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고소당하는 일이 흔하다. 칼잡이가 일반 시민들 보다 칼에 맞을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재판에서 이기면 하나의 원한을 만든다. 지면 쌓이는 원한이 두 개다. 우리 의뢰인의 분노까지 감당하여야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제까지 쌓은 원한이 몇 개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가끔 나에게 패소당한 상대방의 원망어린 눈빛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은 대놓고 선넘는 사람들이 있어 가끔 섬뜩할 때도 있다. 이번 고소 사건도 과거 재판에서 쌓은 원한에서 비롯되었다.

수년전 지역에서 꽤나 유명했던 아파트 주민간 집단분쟁이 있었다. 분쟁 초기 한쪽 편은 부산만 남기고 점령당한 1950년 대한민국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수세에 몰린 진영에서 견디다 못해 해결사를 불러들였는데, 그가 바로 나였다. 이후 나의 의뢰인들은 전열을 재정비해서 조직화된 반격을 시작하였다. 반격은 내가 경찰을 매수했다는 헛(!)소문이 날정도로 효과적이었다.

급히 전투에 참여하여 한창 피를 보고 있던 중 상대방 측에 나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교 몇 해 선배가 상대 진영의 해결사로 등장하여 나를 더 난감하게 만들었다. 계속 법의 칼을 휘두르면 그들이 다칠 것이 분명했다.

휴전 협의를 우선 진행하였다. 하지만 협상은 파행으로 흘렀다. 양측으로 갈린 주민들 모두 다툼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모두에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얽혀있는 인간관계는 잠시 잊고 싸움을 조기에 끝장내기 위해 감정없는 터미네이터가 되기로 했다.

상대측은 재판과정에서 궁지에 몰리자 나와의 개인적인 인간관계까지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미 전투 로봇이 된 나의 공격은 치명적이었고 뜨거웠다. 오로지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빨리 승소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영화에서처럼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뜨겁게 진행되는 법정 변론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지만 나는 이례적으로 그 사건을 진행하며 현실세계에서 그 판타지를 실현했다.

결국 첫 사건에서 승소했다. 첫 승소는 한국전쟁의 흐름을 한 번에 바꾼 인천상륙작전 성공과도 같은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이전까지 수세에 몰렸던 우리 측은 그 승소를 바탕으로 이후 재판에서 줄줄이 승소했다. 집단분쟁의 최종 승리자는 우리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사건에서 나는 불필요하게 거친 변호사였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뜨거운 변호사라는 세간의 명성(?)을 얻기도 하였지만 상대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것 같다. 누군가는 명예를 잃었다. 심지어 직업을 잃은 이도 있었다.

그 후로부터 몇 년 후 그들 중 한명이 나를 고소하였다. 출석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사건 배경을 설명하고 '그냥 법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고소인에게 연락을 했다. '일이었기에 거칠게 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진심이었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용서하지 못하겠다.' '고소취하는 바라지 말라'는 고소인의 말에 나는 '사건은 법대로 될 것이다. 다만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인간관계에 서툴렀던 그때의 내가 아쉬웠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라 답했다. 격앙된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통화를 마쳤다. 얼마 전 고소사건 처리결과를 통보받았다. '혐의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냉정한 업무처리로 상처받은 분들에게 인간적으로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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