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제 것 다 내어 주고도 끊임없이 퍼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속으로 더 뭉근한 모닥불 같은 사랑이 부성애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 제 목숨 다 해 남김없이 주는 가시고기 같은 사랑이다. 한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씨가 아버지로부터 라면, 길러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어머니다.'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어찌 살까.'곰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언제든 열려있는 아빠 찬스는 무한하다. 시집간 딸내미가 친정에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남편은 벌써부터 분주해진다. 아빠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을 여식들을 생각하며 싸서 보낼 것까지 풍성하게 장을 본다. 맛을 내기 위한 온갖 재료들을 다 모으는 장보기에서 완성까지 하루 반나절 이상을 보낸다. 들뜬 마음은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는 어린왕자의 고백 그 이상이다. 묵은지, 오징어, 부추. 애호박, 양파를 준비한다. 부침가루와 밀가루 달걀을 푼 반죽에 온갖 재료들을 듬뿍 넣어 김치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한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얇고 바삭하게 잘도 부친다, 처음 만든 것을 맛보기로 시작해 수북이 성을 쌓을 정도니 잔칫집이 따로 없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아이들에게 난 건강한 간식과 밥상을 챙기는 부지런한 엄마였다. 손목이 아프도록 계란 흰자위 거품을 내어 카스테라를 만들고 애들 생일엔 친구들을 초대해 김치피자를 만들었다. 송송 썬 김치와 다진 소고기, 버섯, 양파, 피망을 볶아 우유에 갠 도우 위에 올리고 피자치즈를 얹는다. 약한 불에 은근하게 데우면 쫀득하고 맛깔 나는 퓨전코리아 피자가 된다. 느끼하지 않은 맛 때문에 아이들이 김치를 많이 먹게 되니 일석이조 요리가 아닐 수 없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듯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만들기도 했다. 고구마로 맛탕을 만들고 감자를 갈아 부침개를 부친다. 식빵위에 채소와 피자치즈를 올려 토스트를 만들며 쭉쭉 늘어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은 배달요리를 즐겨 먹기 시작했다. 전화 한 통이면 금방 초인종을 누른다. 빨리빨리 문화가 인스턴트 먹거리로 우리의 안방까지 노크한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도 나도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일회용 즉석요리와 친숙해졌다. 퇴직 후 남편이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아빠표 요리를 맛보게 하는 기쁨을 주게 되었다. 주방 일이란 표시나지 않게 하는 것들이 은근 많아 힘들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남편은 있는 힘껏 나를 돕는다.'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무래도 주방 권세를 넘겨줘야 할까 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묵묵한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며 가정의 버팀목이 되는 아버지의 변화가 참으로 놀랍다. 밖에서 주방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빠가 만들어 주는 부침개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딸들을 기다리며 김치전을 부친다. 내 품에 있던 자식들이 어느새 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제 어미보다 아빠보다 자기 자식들을 더 잘해 먹인다. 딸내미들의 엄마표 밥상이 미덥기 그지없다. 사랑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쉽고도 어려운 것이 가족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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