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소설을 토대로 한 TV 드라마가 있었다. '완장(윤홍길 작:1982년)'이다. 최 사장은 저수지 유료 낚시터를 조성한다. 최 사장은 건달, 종술에게 관리를 맡긴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저수지 관리가 자신을 '보이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 믿고 선뜻 허락한다. 적은 보수는 허락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완장(腕章)을 두른 그는 갈수록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목소리도 커졌다. 낚시꾼에게 괜스레 시비를 걸기도 했다. 허락 없이 낚시하던 초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는 등 월권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읍내에서도 완장을 두르고 다녔다. 종술에게 완장을 벗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막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물고기 떼죽음과 물 방류를 놓고 수리조합 측과 충돌했다. 종술은 급기야 완장의 허황을 알고 완장을 저수지에 버린다.

종술처럼 완장을 찬 인간이 새로 나타났다. 지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3,860명 말이다. 완장과 같은 금배지를 달게 된다. 완장과 금배지는 형태만 다를 뿐 권위주의적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 기능이 같다. 수직적 위계 서열의 상징이며 권력의 표상이다. 국가가 그 권력을 보장하고 국민이 위임한다. 권력 행사는 그 범위와 한계를 지닌다. 월권행위나 남용은 금물이다.

이들은 칼자루에 비유되기도 한다. 칼자루가 도마 위 생선을 요리할 수 있는 것처럼 완장과 금배지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휘하거나 꾸짖는 호령의 권한도 내포한다. 통솔력을 가진다. 권력은 마약의 힘을 발휘한다. 맞본 권력을 잊지 못함은 물론 더 강한 권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완장과 금배지는 월권과 남용을 배태한다.

종술은 완장 행사의 대상과 범위를 넘었다. 남용했다. 오만방자해 낚시꾼은 물론 마을 사람과 충돌을 빚었다. 그는 뒤늦게 완장의 노예가 됐음을 깨닫고 완장을 과감히 벗어버렸다.

다음 달 새로운 지방의회가 구성된다. 의원들이 금배지를 단다. 선거기간 동안 밑으로, 밑으로 기었던 그들이 먼저 해당 공무원 위에 올라선다. 보란 듯이 금배지를 달고 동네를 휘젓는다. 눈에 선하다. 종술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금배지는 일본산이다. 부작용도 크다. 금배지를 단다고 해서 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시민의 눈살만 찌푸리게 할 뿐이다. 지방의원 나리들! 권력 의식을 버리고 국민 위에 군림하지 마라. 밑으로, 밑으로 기어라. 당선을 위해 기를 쓰고 했던 대로 말이다. 그래야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귀를 기울여 듣는 경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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