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이효석 소설가의 '메밀꽃 필 무렵' 내용 중 허생원이 밤길을 걸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메밀꽃을 바라보는 정경을 마치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엊저녁 귀가하며 학교 앞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 울타리에 하얗게 만발한 조팝나무꽃을 보았다.

꽃 주위에는 인근 주택 주민들이 일조권 침해와 교통 불편을 이유로 고층 아파트 건축을 결사 반대한다는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볼썽사납게 바람에 펄럭이는데...

고향 어른들은 물론 우리는 흔히 이 꽃을 '싸리꽃'이라 부르는데 더 익숙해 왔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가에서 한 움큼 꽃을 꺾어 오면 어머니는 볍씨를 담은 질그릇 중앙에 꽂으며 "올 벼농사 풍년 들겠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시골 어느 들녘이나 개울가를 둘러봐도 흔하게 피어나고 있으리라.

나는 이 꽃을 보며 종종 쌀 튀밥을 흩뿌려 놓았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배고픔을 겪어 본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봐도 먼저 음식과 관련 지어 연상하는 게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십 수년 전 5월로 기억된다. 계절의 변화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지고 모두 화사하게 보이는데 유독 나만이 무덤덤하게 그 무엇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적이 있었다.

벚꽃이 언제 피고 지는지, 농사철이 시작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고작 집 마당에 피어나는 백목련을 보고서야 세월의 흐름을 어림짐작하는 나태함에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만 큰맘먹고 주말 시낭송협회 회원들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예술가곡진흥위원회'창립 기념 문학을 위한 신작 가곡음악회 '우리 시 우리 노래' 공연을 관람하러 상경했다.

버스 속에서 바깥 연록의 풍경을 바라보니 왜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자책감이 일었다.

은발의 노 교수 바리톤 오현명 님의 '4월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아직도 말라붙은 눈물샘이 자극받을 여유가 있었던 말인가? 하며 쓴웃음이 나왔다.

빛나는 꿈의 계절, 아름다운 무지개 계절을 나는 왜 느끼지 못하고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걸까? 반 박자만 내리고 살아도 한결 마음 편할 것을...

이어서 어느 성악가가 부른 '시인세계'에서 대중가요 아름다운 노랫말 1위로 선정한 '봄날은 간다'도 꽤 감명 깊게 들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대중가요라 하기보다 그저 한 편의 시낭송을 듣는 것 같다는 느낌은 비단 나뿐 아니라 함께한 회원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나는 문득 콘서트홀 무대 자막에 들녘 여기저기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는 조팝나무꽃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귀한 것이 아니라 하여 평소 늘 대하는 일들을 과소평가 하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았던가? 아무렇게 피어 난 저 조팝나무꽃도 결국은 아무렇게 핀 게 아니라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고귀하게 피어났을 진대...

오늘도 속절없이 지나간 봄날을 그리며 초여름 개망초가 눈에 가득 새하얗게 웃고 있는 산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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