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중국의 문인이자 사상가이며 '아큐정전(阿Q正傳)'의 저자인 루쉰이 한 말이다.

루쉰이 1936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 86년이 흘렀지만,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 패배라는 펀치를 잇달아 얻어맞고도 여전히 정신 줄을 붙잡지 못하는 민주당을 보고 있자니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몽매한 중국 민중과 혁명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아큐정전과도 닮아 있는 모습에 소름까지 돋는다. 0.73%포인트의 패배가 독약인 줄 모르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는 민주당의 정신승리법도 그러하고, 독배를 성배로 착각하고 마신 뒤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

민주당이 텃밭이라고 여기는 광주광역시의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전국 최저치인 37.7%를 기록한 것만 봐도 더 이상 궤변을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조차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줬던 광주시의 투표율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일갈하겠는가.

문제는 '20년 집권론'을 운운하며 그토록 오만했던 민주당의 균열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친명(친 이재명)과 친문(친 문재인)이 도수가 서로 다른 안경을 끼고 권력투쟁에 함몰돼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더 큰 붕괴를 마주할 수 있기에 하는 얘기다. 170석의 거대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혁의 에너지를 제시하지 못한 채 불통의 정당으로 전락한 것도 부족해 내 탓보다 남 탓을 하며 싸움질에만 매달린다면 더 참혹한 결과가 기다릴 뿐이다.

무릇 사불범정(邪不犯正)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을 감히 범하지 못함을 이르니, 어찌 보면 사달이 안 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정치교체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것이 작게는 민주당이 사는 길이고, 크게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는 길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혼자 살기 위해 민주당을 죽이는 길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무례한 오판인지 뼈저린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 머리는 이미 일류에 다다랐는데 정치인의 입과 판단력은 4류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도대체 언제까지 국민들이 거꾸로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가.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20년 집권을 장담했던 민주당의 웃픈 현실을 보면서 5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정부가 어떻게 국정을 펼쳐야 하는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번 선거도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잇단 실책이 반사이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땜질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임계치에 다다른 국민의 인내심을 다독일 수 없다. 그만큼 민생이 팍팍하고 민심이 피폐해져 있기 때문이다. 빗물이 새는 지붕을 고치고 구멍 난 바닥을 보수하는 정도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자만은 외려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천지를 개벽하는 수준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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