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대원 전무이사·수필가

꽃은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듯하다. 네 개의 발톱을 잔뜩 오므려 먹이를 포착하고 낚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순간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꽃의 모습은 먹이를 얻고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생존 경쟁의 모습은 아니다. 활짝 핀 꽃은 살벌한 분위기가 아닌 우아하기 그지없다. 아니 기와집 처마 끝에 불 밝힌 청사초롱처럼 화려하다. 붉은 매발톱꽃을 바라보며 꽃을 피우기까지 생태 과정이 스쳐 간다.

하늘정원은 '바람골'이라 불릴 정도로 바람이 잦다. 바람이 수시로 불어 꽃을 렌즈에 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꽃을 바라보며 바람이 잦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꽃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사진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남에게 보여줄 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장독대 벽면이 옅은 회색이라 대상을 담기에 적당하다. 미리 풍경 이미지를 계획하고 지난해 어린 매발톱을 옮겨 심고 꽃을 기다렸다. 내가 귀한 대상을 얻고자 함은 수백일 기다림도 지치지 않는다.

드디어 장독대 주변에서 한 송이의 꽃이 활짝 피었다. 검붉은 헛꽃 다섯 장의 꽃잎이 날렵하다. 헛꽃이 감싸는 종 모양이 소중한 보물을 품은 듯 미색의 수술을 감싸고 있다. 종 모양의 꽃등이 마치 매의 발톱을 닮아 '매발톱'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이름처럼 안정감 있게 비상하는 매의 모습이다. 하지만, 헛꽃은 이름과는 다르게 붉은 기운의 색이 마치 왕후가 차려입은 옷처럼 중후한 멋이 흐른다. 꽃의 품격에 맞게 꽃 이름을 붙이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식물학자가 문인이었다면, 꽃 이름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감각을 발휘하여 꽃의 격에 맞는 이름을 지었지 싶다. 그러고 보면, 만물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일방적인 잣대로 이름이 붙는다. 이와 다르게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아니 세상의 빛을 보고 이름을 얻는다. 인간은 식물처럼 생긴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이는 건 아니다. 부모는 미래 아이의 모습을 기원하며 이름을 짓는다. 순간 '사람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은희銀姬. '희'자는 집안의 돌림자를 쓰고 '은'자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딸 여섯이 모두 이름 가운데 '은'자가 들어간다. 딸부잣집으로 소문난 집에 맏이로 태어나 여동생이 여섯이나 되니, 나는 '동생 부자'가 틀림없다. 우리가 성장할 때는 미처 몰랐다. 태산 같은 두 분이 안 계시자 두 어깨가 무거워지며, 동생들이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우듯 큰 의지가 된다. 세상에 태어나 '이름값을 제대로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름값 하느냐고 세상사에 목숨 거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 누구의 친구 … 여러 개의 이름값을 다하려면, 끝이 없으리라.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세상을 자기 소신대로 머물다 돌아가는 사람이 부럽다. 도연명이 그렇고, 다산의 애제자인 황상이 그렇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업 삼아 은거하는 사람이 부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멀리하고 은자隱者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곁에서 매발톱이 바람결에 온몸을 흔든다. 이름값으로 생의 버거움에 함몰되지 말라는 몸짓만 같다. 매발톱꽃도 인간이 지어준 이름과 상관없이 세상에 머물고 있잖은가. 식물 앞에서 별거 없는 사유에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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