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 넘치는 누리달 유월이다. 꽃보다 곱다는 싱그러운 녹음에 취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독서토론회 멤버는 누리 달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추천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처음엔 웬 흘러간 노래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삼촌이 6·25 때 납북되고 아버지가 남영동 대공 분실에 불려가 조작된 간첩 누명을 써서 평생을 신원 특이자로 살았다고 한다. 연좌제란 명목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 무척 억울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6월이 되면 박완서의 이 두 권 책을 읽으며 너희들이 6·25를 아느냐고 넋두리한단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한 자신이 철없어 보이고 전후 세대인 동갑내기 그녀가 참 어른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자본주의, 물신주의에 물들어 착각 속에 잊고 산다. 6·25가 언제 적 이야기인데, 김정은이 툭하면 하는 핵실험이고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인데 하면서 대개가 양치기 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 일간지 주필의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사설이 생각났다. "첫째는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르는 것 같다. 둘째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모르는 것 같다."라고 한 것이 셋째였다. 휴전선은'6·25 전쟁의 휴전에 따라서 한반도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설정된 군사 경계선'으로 어학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는 박완서의 연작 자전소설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치던 스무 살 박완서의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작중 주인공 '나'가 스무 살의 성년으로 들어서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 성년의 삶을 그렸다. 이 소설은 두려운 이념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생명과 삶에 대한 갈망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뒤틀린 이념 갈등 아래 삶의 공간을 생생하고 눈물겹게 그렸다. 이 작품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작이다.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출간된 지 30여 년이 된 작품을 박완서 타계 10주기에 맞추어 다시 발간했다니 뜻깊은 일이다.

당연히 주어진 자유가 아니다. 이름 모를 순국선열들이 흘린 숭고한 피의 대가로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말을 싫어해서 라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한 번쯤 읽어 보고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했으면 하는 게 그녀의 의미 있는 메시지리라. 정곡을 찌르는 누리달의 넋두리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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