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제19대 대통령의 퇴임 이후 그의 양산 사저 앞에서 계속되는 시위의 내용이 각종 언론에 자주 소개된다. 끊임없는 소음으로 주변 이웃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내용에서부터 욕설 시위, 집회 신청과 허가 문제, 결국 현직 대통령의 우려가 공식 석상에서 표현되었다는 기사 등을 통해 집회를 강행하는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현장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집회의 권리가 있다.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집회를 할 수 있고,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할 수 있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생각조차 하지 못할 다양한 집회를 통해 여러 단체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자신들의 억울한 입장을 항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인권신장의 결과물이다. 폭력적 진압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성숙과 함께 '인권'에 대한 이해와 인권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다.

인권(人權, Human rights))이란 단어의 유래는 고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보편적 인권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즉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도덕적 가치를 주장하기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는 것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사회복지 현장에 많은 인권교육에 참여하게 되는데, 인권을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등과 같은 '권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나의 '권리'만을 생각하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는 전제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차별을 두는 순간 인권에 대해 논할 수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존엄성을 무시한다면, 나의 존엄성 또한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로 실현할 수 있는 '공동선(共動善, common good)'의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공동선이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리주의 개념과는 다르다.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의 총합을 의미한다. 일부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구성원들의 기본적 삶의 조건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함께 의미하고 있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굳이 90년생, 민지(MZ) 세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강력한 자기주장과 이로 인한 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인간의 권리이기는 하나,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이웃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가 말하는 대통합 또한 사회 구성원의 존엄성을 존중해 주는 방향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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