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광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장

닭발. 마니아층이 두터운 서민음식이다. 쫀득쫀득, 촉촉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맛은 밥도둑이자 술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오독오독 식감을 선사하는 연한 뼈는 씹어 넘길 수 있지만 중심부의 단단한 뼈는 먹기 어렵다. 그래서 등장한 게 '무뼈 닭발'이다. 공장에서 위생적인 과정을 거쳐 닭발에서 뼈를 발라내면 탄생한다. 이 무뼈 닭발은 국물닭발, 매운닭발, 통닭발, 훈제닭발 요리에 두루두루 사용돼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5월 하순, 신고가 접수됐다. 외국산 '무뼈 닭발'을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무뼈 닭발?' 흐릿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시장통 닭발집에서 소주를 즐기던 시절. 무뼈 닭발을 처음 접하고 탄성을 질렀던 때. 하지만 추억의 잔상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무뼈 닭발'의 원산지를 속여 판다는 신고가 처음이었기에 그랬다. 혹시 잘못 들어온 신고 아닐까. 잘못된 신고는 잔뜩 긴장한 마음과 몸에서 기력을 빼내는 재주가 있다. 잠시지만 주저되고 멈칫거렸다. 하지만 원산지 단속의 기본은 접수된 신고를 확인하는 것이다. 긴장감을 일으켜 세워 국내산과 외국산 '무뼈 닭발'의 차이를 구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외관으로 뚜렷한 구분이 가능했다. 외국 닭은 우리 닭보다 두 배 큰 '왕발'이었다.

이제는 물증을 확보해야 하는 단계다. '띠로롱' 신호음과 함께 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A 닭발입니다." "아. 여기 가나 아파트 000동 111호 인데요. 숯불구이 무뼈 닭발하고요. 훈제 무뼈 닭발 배달해 주세요." 배달은 신속했다.

온기가 담긴 매콤한 냄새의 닭발을 젓가락으로 잡아들었다. 왕발! 신고는 정확했다. 증거를 확보하고 업체를 조사했다. 냉장창고에는 브라질 국적 왕 닭발들이 국산 닭발의 탈을 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명백한 증거 앞에 업주는 원산지 위반 사실을 인정할 도리밖에 없었다. 인정을 하면서도 '코로나로 인해 닭발 뼈를 제거할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 그랬다.'며 변명했다. 손님에게 비싼 돈을 받고 국산 닭발로 판 뒤에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 브라질 왕 닭발로 대신했으니 이해해 달라'는 바와 같았다.

그런데 외국산 무뼈 닭발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킨 사례는 충청북도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위반이 있을 수 있었다. 왕발을 먹으면서 국내산이라 생각할 소비자들. 부랴부랴 국내산과 외국산 닭발의 차이와 실물사진을 정리해 전국 원산지 단속 담당자에게 알렸다. 동시에 무뼈 닭발 유통업계 내부에서도 원산지 단속 사실이 빠르게 전파됐다.

윤광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장
윤광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장

그 후 두 달 여간 전국 상황을 살펴봤다. 다행히 더 이상 무뼈 닭발의 원산지 위반은 발견되지 않았다. 재빠른 소비자의 신고와 신속한 대처로 원산지 위반이 시작되는 초기에 잡아, 전국적 확산을 막았다. 이는 원산지 단속의 골든타임을 잡은 바와 같았다. 닭발을 즐기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한편, 물 건너온 왕 닭발로 인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뻔한 원산지 담당들의 수고도 덜었다. 식당이나 마트에서 원산지가 조금이라도 의심될 경우 전화(1588-8112) 또는 농관원누리집(www.naqs.go.kr)으로 신고해 주길 부탁드린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신고는 원산지 단속의 골든타임을 잡는 데 큰 힘이 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