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얼마 전 드라마 한 편을 재미있게 보았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모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쟝르이긴 하지만 때로는 더 극(劇)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미처 깨닫지 못한 내면의 상처를 일깨우기도 하고 그 상처를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치유하기도 한다.

'나의 해방 일지'

드라마 제목이다.

'해방'이라는 단어는 낯익긴 하지만 뭔지 모를 무게감을 갖는다.

개인적인 사건으로서의 일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과의 연결고리로 인해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타의에 의한 치욕과 억눌림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때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공적인 무게감보다 개인적 해방의 가벼움을 생각하며 드라마를 보았다.

16부작, 4개월에 걸친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건 아니다. 어쩌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만난 이 드라마는 처음 몇 회는 전반적인 전개가 느리고 지루하기까지 해서 외면했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너무나 자극적인 복수극이나 치정에 얽힌 말초적인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익숙해 있었고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이 작가 마음대로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욕하면서도 보았던 다른 드라마와는 완전 결이 달랐다.

서울로 입성하지 못하고 두세 시간이 넘는 통근을 하며 삶에 지쳐가는 지리멸멸한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 드라마는 그리고 있다. 승진, 정규직 전환, 신분의 상승, 연애와 결혼.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던 굴레로부터의 그 무엇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비루하고 참담하며 고단한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화려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를 예찬하는 이유는 이 드라마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의 선택 때문인지도 모른다.

막내딸 '염미정'은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비애, 집안에서도 자기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모든 관계가 노동이다'라는 생각으로 오백 살쯤 먹은 듯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다. 그런 그녀가 술만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 해달라고 한다. 사랑을 넘어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었던 자신이 한 번은 가득 찰 수 있게 추앙해 달라고. '미정'이 알콜 중독자 구씨에게 '술을 마시지 마라'가 아닌 소주 두 병을 사다 주는 일로 결국 '구씨'는 술로부터 해방된다. 지위가 높아서도 가진 것이 많아서도 아닌, 있는 그 자체로 상대를 인정하고 추앙하는 일이 자신을, 상대를 구원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또 하나 있다.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환대하자'라고 한다. 요즘 한참 사람 사이에서 겪었던 부당한 감정들로 인해 속이 너덜너덜해 있던, 도저히 회복 가망성이 없이 애를 태우던 나의 가슴을 해방시켜 주는 단어 하나를 만났다. 나에게 갑질하는 사람들을 '환대해 보자' 마음먹어 보기로 한 것이다. 결국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환대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의 감옥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단 몇 초의 설레임이 쌓여 오 분을 만들고 그 오 분이 하루를 견디게 한다는 드라마의 메시지의 여운을 새기며 녹음 짙어지는 성하(盛夏)의 계절을 추앙하고 환대하며 맞이한다. 비록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남을 환대하는 데서 오는 묘한 자기 해방감, 앞으로도 쭉 그렇게 느끼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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