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언론들의 모든 보도는 사실에 기반한 공정한 보도일까. 한 TV 뉴스는 이렇게 전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뉴욕주만도 17만 명을 넘어서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확진자가 많습니다. 사망자 숫자도 급증하면서 뉴욕시 인근 묘지 섬에 시신이 집단 매장되는 모습까지 공개됐는데요. 뉴욕시 브롱크스 북동쪽 인근의 섬입니다, 긴 구덩이 안에서 방호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수십 개의 소나무 관을 묻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나중에 이장을 원할 경우에 대비해 관 위에 망자의 이름을 써놨습니다. 뉴욕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7천 명을 넘어서자 예전 무연고 묘지로 썼던 섬에 시신을 가매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뉴욕시 안에 있는 시신 안치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공포감도 잠시, 순간 의문이 들었다. 뉴욕에서 아무리 코로나 사망자가 넘쳐난다고 해도 섬에 시신을 내버리듯 매장할 수는 없을 터, 직접 미국 신문과 가매장지로 언급된 묘지섬을 확인해 보았다. 허드슨강에 위치한 하트섬(Hart Island)이었다. 하트섬은 과거 남북전쟁 당시 군대의 훈련장이었고 현재는 무연고자(homeless)들의 공동묘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도 내용에서는 이곳에 매장되는 사망자들이 연고가 전혀 없는 홈리스들이란 표현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보통 시민들을 그렇게 매장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지역 봉쇄에 따른 사재기 보도도 그렇다. 우리 사회도 사재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같은 군사적 위협 등 특정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익숙하게 듣는 말이지만 언론들은 이를 두고 성숙한 국민 의식으로 설명한다. 국민 의식이 성숙해서 그럴 수도,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북한의 위협에 시달려오면서 이제는 웬만한 위협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 카나다, 호주 등은 많게는 우리나라 면적의 백배 이상의 크기를 갖는다. 인구밀도는 현저히 낮다. 거주 근린 지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영업자 비율도 매우 낮은 편이다. 교외 지역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로빈슨식 주거 형태도 많다. 이들에게 이런 공간적,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문제는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이들이 일정 기간을 주기로 원거리를 오가며 대량 구매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우리는 문만 열고 나가면 언제 어디에서든 원하는 상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매 접근성이 매우 좋은 환경이다.

지리학자들은 이런 사회적 현상을 공간적 환경을 통해 설명한다. 이를 거세하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유의미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일본은 화산대에 위치함으로 화산, 지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 트라우마가 우리보다 훨씬 크다. 반면 우리는 이런 재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공간적 환경의 차이가 인간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준 결과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같은 사안이라도 특정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가 개입되면 여론은 쉽게 왜곡된다. 위험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헬스컴과 제주언론학회 공동 세미나(2022)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KBS는 코로나19 보도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팩트를 부풀려 공포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또 다른 연구(한국행정연구원, 2010)에서도 언론은 위기 확산의 조정자였다기보다는 위기 확대의 추종자이자 조력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처음 언론의 시각은 수입 소고기 문제에 따른 국내 축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경제적 프레임이었으나 광우병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변질시킨 것은 좋은 사례다. 1%의 진실만으로도 대중은 쉽게 세뇌될 수 있다는 말이 그른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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