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고향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후배와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학원장이 고소당해 수사 끝에 재판에 넘겨졌다고 한다. 수사절차까지는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어떻게든 버텼는데 재판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친족사건 결과에 대한 무게감을 견디기 어려워 더 이상 본인이 진행하기는 무리라 생각되어 나를 찾았다고 한다. 이른바 품앗이 사건이어서 거절하기 어렵다.

원장님의 혐의는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을 다니던 초등학교 어린이를 꼬집어 멍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사건. 아동학대는 자극적인 주제이기도 하고, 특히 최근 아동학대로 어린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던 터라 자칫하면 재판으로 유무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여론에 의한 명예사형을 당할 우려도 있었다.

처음 원장님과 대면한 날 사건과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행여 있다면 그 부분을 자백하고 반성한다고 진술하면 유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선처를 받을 있으니 기억을 잘 더듬어 보라고 하였다. 원장님은 일말의 거짓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였다.

형사 사건에서 혐의를 부인하다가 유죄로 인정되면 대개는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 선처는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자백과 반성이 전제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혐의 부인은 형사재판에서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이다. 일반적으로 무죄율은 불과 1%가량. 반드시 무죄를 받아야 하는 사건이다. 퇴로는 없다. 더군다나 이목이 집중된 아동학대라니...

몇 번의 상담 후 원장님의 성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쪽같았다. 캐릭터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수사자료를 검토하였다. 다행히 허점이 보였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하나 진술에 일관성이 떨어졌다. 아이의 진술은 유죄의 예단을 가진 수사관의 의도에 따라 바뀌는 느낌도 강했다. 피해 어린이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다른 어린이의 진술 역시 그랬다. 그 부모의 진술은 피해 어린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어린이의 진술과 미세하게 달랐다.

원장님의 유죄를 입증하고자 제출된 여러 증거들을 재구성하여 사건 당일 현장을 머릿속에서 재현해 보았다. 잘못 편집된 영화처럼 스토리가 엉성했다. 아이 진술의 행간에서 학원에 다니기 싫었던 어린이가 학원을 그만두는 구실로 선생님이 때린다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의뢰인에게 혐의 부인의 위험성을 알리고 동의를 얻었다. 공격적인 변호인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위태로운 도박을 시작했다.

피해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몇몇 지인이 증인석에 섰다. 피해 어린이는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바꿨다. 무엇보다도 앞서 증언한 부모의 말과 뒤에 피해 어린이와 그 누나의 결정적 진술마저 달랐다. 신문을 할수록 무죄의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강한 확신은 더욱 적극적인 반대신문을 가능하게 했고,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개연성을 넘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결국 아동학대는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런 진실 앞의 피해 어린이 부모의 태도는 나의 예상 밖이었다. 자녀가 학대당한 적이 없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흥분하여 그 사실을 밝혀낸 나를 비난했다. 마치 학대를 당했기를 바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허튼 믿음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2년 여간 원장님의 삶을 들쑤셔놓고 갑자기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무죄로 찾은 평온은 태풍이 지나간 폐허를 비추는 햇살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원장님의 일상을 더 참혹하게 보이게 했다. 거짓말의 부작용은 너무 컸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아이들은 거짓말을 한다.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 본능인 것 같다. 거짓말한 아이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의 여러 의도 때문에 추가로 거짓말하도록 내몰린 것이 딱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모질게 몰아붙였던 수사기관은 원래 속성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학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 대신 분노를 쏟아낸 이들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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