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박계순 솔밭중 수석교사

지난봄 엄마의 정원에서 15년 넘게 자라던 나무 중 몇 개를 지인들의 정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뿌리가 잘리고 가지가 꺾이고 흙이 털리어 벌거숭이가 된 채 낯선 곳으로 옮겨진 나무들은 여름이 되는 동안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원의 나무처럼 우리도 때로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관계 맺는 삶을 산다. 나 또한 올해 새내기 수석교사가 돼 학교를 옮겼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석교사로서 수업 나눔을 제안했고, 먼저 수업을 공개하겠노라 선언했다. 첫 공개수업에는 아무도 참관하러 오지 않았다. 정성껏 준비한 잔치에 손님이 없는 꼴이니 정말 속상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한 달에 한 번 공개수업을 계획하고 실천했다.

간절한 기다림에 반응이 보이기 시작한 건 석 달만이었다. '도덕도 통일 단원이 있는데 항상 어려워요. 잠깐 가서 수석님 수업을 참관해도 될까요?' 이 메시지에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활동을 할 때가 아닌, 학생들이 마구 말썽부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다녀갔다. 특별한 해답을 원했을 선생님께 부족한 장면만 보여준 것이다.

박계순 솔밭중 수석교사
박계순 솔밭중 수석교사

이 수업이 마중물이 되어 다음에 이어진 공개수업은 다른 학교 선생님들까지 참관하게 됐다. 지난 수업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많이 준비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업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 활동이 너무 많아 힘들어진 학생들은 집중력을 잃었고, 시간에 쫓긴 나는 목소리가 커지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급기야 참관 중인 선생님이 '저쪽 모둠의 학생들끼리 싸우고 있어요!'라고 귓속말을 전해주는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벌어졌다. 아, 교실에 쥐구멍이 있었더라면 아마 0.1초 만에 그 속으로 다이빙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아직 뿌리 내리지도,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저마다 성장의 속도는 다르지 않은가? 스스로 상처를 딛고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연습하며 무성한 열매를 맺을 지혜를 가진 교사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도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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