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도 어려운데 모바일 예약은 더 못해"

8일 청주시 흥덕구의 한 은행에서 노인이 화상상담 전용창구를 둘러보고 있다. /김명년
8일 청주시 흥덕구의 한 은행에서 노인이 화상상담 전용창구를 둘러보고 있다. /김명년

[중부매일 박건영 기자] 대학생 이준규(24·청주시 흥덕구)씨는 적금을 들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고객들로 붐비는 점심시간 대에 방문했으나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은행을 방문하기 전 은행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미리 모바일 번호표를 발급 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20여분 만에 업무를 마치고 나왔다.

청주시 상당구에 거주하는 전 모(64)씨는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가봤지만, 11명의 대기자가 있었다. 결국 은행 업무를 마치는데 1시간 30여분이 소요됐다.

전씨는 "젊은 사람들이 은행에 오자마자 창구로 들어가길래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모바일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며 "아직 ATM기 사용도 어려운데 휴대폰으로 예약하는 방법은 알 수가 없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충북은 2021년 고령인구(65세 이상)가 29만명(17.7%)으로, 고령사회로 분류된다. 더욱이 불과 3년 이후인 오는 2025년이면 고령인구가 35만7천명(21.7%)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코로나19 이후 금융권 내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 특히 노인들의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해 내놓는 서비스들은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불편함을 낳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모양새다.

흥덕구 가경동 한 은행 직원은 "창구를 찾아오시는 고객 중 상당 수가 어르신들이고, 비대면으로 처리하시는 분들은 드물다"면서도 "코로나19 이후 인터넷 뱅킹에 적응한 젊은 층들 발길이 더욱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충청권 은행 점포 수는 309곳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이었던 2019년(330곳)에 비해 21곳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요가 급증한 은행들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점포를 폐점하고 인근 점포와 통합시키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내몰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전에는 접근성을 중요시해 은행 대부분이 1층에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에는 임대료 절감 등을 위해 2층이나 3층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도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은행들이 디지털 취약계층들을 돕는 직원을 배치하는 등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불편함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응모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취약계층, 특히 노인들의 디지털 기기 숙달 속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의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한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이론적인 교육을 하는 것보다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사용하게 하거나 목표를 주고 해결해보도록 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지털 취약계층들을 민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