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모두 모이니 열다섯이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대학생 아들을 둔 딸이 펼침 막을 준비해 걸고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는 밥을 먹었다. 조금 마신 술에도 얼굴이 붉어지신다. 이런 때는 대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극히 조심해야 하는데 조카가 이 말 저 말 늘어놓는다.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이라서 주로 들으며 한 마디씩 더한다.

팔십년 삶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희생과 배려를 바탕으로 살아온 성실한 삶이었다. 말썽 많은 아래 동생을 책임감을 가지고 챙기느라 부부간 말다툼도 적지 않았을 게고 막내 동생의 학업 뒷바라지에도 적지 않은 재물이 들어갔다. 어떻게든 살길을 터주려는 노력에도 동생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막내는 또 그대로 물만 먹고 자라는 풀과 나무가 아니어서 생각과 바람대로 응해주지 않았다. 신학교에 가더니 군종장교로 군대에 갔다. 그곳에서 걱정 없이 연금 받을 때까지 한 20년 있으려니 했더니 그것도 박차고 나와 교회를 한다고 했다. 때마침 가지고 있던 땅에 허름하게라도 짓고 출발하라 했더니 그마저도 상의 없이 건물 전세를 얻어 시작했다.

동생은 형의 기대를 조금도 충족시켜드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너 그렇게 살라고 내가 고생해가며 공부시킨 줄 아느냐'는 원망이 들리는 듯하다. 한 때는 꿈도 많았을 테지만 가장 형편과 시절의 불운으로 접어야만 했을 게다. 아쉽고 서럽고 그리운 젊음은 모두 사라지고 한 세대 너머 자녀들의 젊음도 저물고 있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삶의 흔들림이 왜 없었을까? 한 때는 삶에 지치고 권태로워 탈출구를 춤에서 찾기도 하고 몰래 주식에도 손을 대보고 답답함에 화투판도 기웃거려 보았을 게다. 그 어디에도 참다운 삶의 길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신산한 삶은 멈출 줄 몰랐다. 남들은 다 아무 문제없이 쉽게 되는 일들이 왜 내게는 이토록 힘이 드는가 생각도 들었을 게다.

연세가 들어서도 몇 년 전까지 아파트관리원으로 일했다. 소일거리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 때문이었을 게다. 고용주가 원한다고 위험물 관리산가 하는 자격을 갖추려 고령에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평생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념을 떨칠 수 없다. 이제 시간이 나면 TV를 보신다. 눈치로는 중국영화, 그중에도 무협물에 많이 몰입되어 있는 듯하다. 사랑과 복수와 해피엔딩, 이제까지의 굴곡진 삶 속 희망이 어쩌면 그런 말들 가운데 들어있는지 모른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인간의 삶은 출생과 함께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와 가문과 생활의 주 무대와 성별과 신체적 특징과 성격에 질병까지 많은 것들의 기본 틀이 정해진다 생각하면 굉장한 일이다. 출생 당시 가정형편에 따라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정해지는가? 누구도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없으니 쉽게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다. 다시 건강하게 구순을 맞으시라는 덕담에 별 말씀이 없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사라는데 어떻게 십년을 장담할 수 있으랴.

좋은 세월이 많이 갔지만 이제라도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삶에서, 천국을 바라보고 희망 속에 기쁘게 하루하루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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