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계획을 세웠거나 하고 싶었으나 못한 것이 있는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못해 인생의 회한(悔恨)으로 남긴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나 이런 한을 가지고 산다. 의지력 부족, 경제적/정신적 무능력, 외부 환경적 요인 등 한의 원인은 무수히 많다. 일부는 가슴 아파하지만, 오히려 불가항력의 구실을 들어 자기합리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주도면밀히 기록해 차근차근 실행하는 행위를 칭하는 용어가 있다. '버킷리스트(Bucketful). "다. 죽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다.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10선. 먹거리 버킷리스트 100선. 독서 버킷리스트 1000선 등.

지난 2007년 '버킷리스트'이란 영화 상영 후 유행어가 됐다. 'kick the bucket list'에서 유래됐다. 'kick the bucket'은 '양동이를 차다.'는 뜻이지만, 실제는 '죽음'을 상징한다. 유럽 중세 시대 교수형 집행 때 죄수에 복면을 씌우고 목에 올가미를 걸어 높은 곳에 매단 뒤 양동이 위에 올려세운다. 사형집행 신호가 떨어지면 죄인 스스로 양동이를 발로 차거나 형 집행인이 걷어찬다(kick the bucket). 사형집행 완료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여기서 예술은 삶의 품격과 내적 질을 의미한다. 인생은 허투루 살기에는 너무 짧다는 얘기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계획의 실천은 자신의 삶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 최소한 몇 가지 의미 있는 사건을 저지르라는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다.

최근 10대 보육원 출신 대학 신입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보육원을 나온 지 얼마 안 돼서다. 젊은 나이에 이런 선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참한 일이며 막대한 손실이다. 여기에 더 가슴 아프게 한 게 있다. 극단적 선택 전 짤막하게 남긴 글이다. "삶이 고단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아서 아쉽다..." 고인은 대학생/청년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지식을 얻기 위해 독서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설령 특별한 독서계획이 아니더라도 독서삼매경 생활화와 함께 책으로 친구를 대신했음이(書籍朋友) 분명하다. 하지만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도서관에 즐비한 책과 어렵사리 장만해 책장에 꽂아놓은 책을 마음껏 펴 보지 못한 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실컷 책 읽기'가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 중 최우선이었는지 모른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서 독서 버킷리스트 운운은 자칫 고인 명예를 훼손할 우려로 조심스럽다. 극단적 선택으로 끝낼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되는 데다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기에 용기를 냈다. 특히 고인만이 아닌 동년배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다. 고인은 죽기 전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함을 동년배들에게 대신 한으로 남긴 셈이다. "읽지 못한 책이 많아서 아쉽다. "라는 동년배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독서를 통해 상상력과 사유 역을 왕성하게 키워야 할 요즘 젊은 청년들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은 동년배들이 고인의 한을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질 향상에는 독서만 한 게 없다는 유언 아닌 유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물론 고인의 삶을 지주지 못한 기성세대들은 소중한 메시지를 남긴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청나라 장차오(張潮)는 '10가지 한스러움이 있다[我有十恨]'고 했다. 제일의 한이 독서에 매진하지 못함이다. '일한서낭이주(一恨書囊易?). '書囊'은 책을 얹거나 꽂는 서가, '?'는 '좀 벌레'다. 책 재료가 종이고 과거 제본 재료가 풀이다. 책은 좀의 먹거리였다.

'책장에 꽂힌 책이 좀 스는 게 제일의 한이다. '책은 많은 데 할 일이 많아 책 읽을 틈이 부족해 이런 한이 생겼을까 아니면 갑자기 독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거나 쇠약해진 탓일까? 이것도 아니면 운명(殞命)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찌 되었건 죽기 전에 다 읽지 못함에 대한 한탄이다.

그는 청나라 초기 학자들의 저술을 20여 권을 편찬하고, <유몽영>.<서본초> 등 10여 권을 저술한 당대 걸출한 문인이다. 그는 분명 수많은 책을 읽었을 진데 뭐가 부족해 책이 좀 스는 것이 제일의 한이라 했는가? 수불석권(手不釋卷)으로 독서를 했어도 더 봐야 할 책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에게는 10년 아니 평생 책을 읽어도 시간이 부족했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독서에는 '덥고 춥고, 정신적 시간적 틈이 없고, 책 구입비가 없고.....' 등 핑계 대지 마라. 의지만 있으면 된다. "독서는 죽어서야 끝나는 것이다." 이율곡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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