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마치 누군가 떠밀은 것처럼 60이 되었다. 60이 되고 보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건강하게 늙어가려면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하고, 자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명의 이기를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도 유순해지고 말랑말랑해져야 젊은이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굳어버린 인식으로 새롭게 학습하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새로운 변화에 주저하면 고집 세다고 단정 짓고, 새로 바꾼 디지털 기계 기능을 이해 못하면 문해력 부족으로 치부한다. 설명글을 읽으려 해도 글씨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도 잊어버리는데, 영어 간판은 난감하기만 하다. 또 집단의 편리에 의해 사용하는 합성어와 준말은 이방인으로 만든다. 나이 들면 세상살이에 아둔해지어 적당히 체념하며 사는 게 좋다는데 더 예민해지고 편협해져서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인터넷에서 회원 가입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반복하며 진땀 빼야 하고, 셀프 주유소에도 여전히 주유 후 기름 몇 방울의 흔적을 남긴다. 커피 주문도 무인으로 바뀐 곳이 있다. 한 잔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화면의 문구를 반복해 읽다 보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은근히 신경 쓰이고, 휴대폰 번호 동의하겠습니까? 질문에는 예, 아니요, 어떤 것을 눌러야 되는지 난감하다.

결제 카드도 코로나19 이후로 단말기에 직접 넣어야 하는데 한동안 습관처럼 카드를 종업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준 적 있다. 불편한 표정에서 현실은 냉혹하다.

수업 시간, 컴퓨터로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도 미숙한 검색 방법을 직감한 아이들이 빠르게 해결해준다. 노래 취향은 정말 소통이 안 된다. 아카시아꽃이 피던 날 '과수원길' 동요를 들려주었더니 반응이 없다. 첫 소절 동구 밖 과수원 길의 '동구 밖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환경과 관심을외면하고 내 경험의 정서로 다가서려던 의도가 벌줌 해졌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고백하는데 60이 넘고 보니 보여주는 내 모습과는 달리 나만 알 수 있는 삶의 버거움과 답답함이 조금씩 많아진다. 수첩을 대신하여 기록하는 핸드폰 메모장은 또 다른 내 기억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상상은 나만의 역사가 사라지는 불안한 두려움이다. 60이 넘게 사용한 음력 생일도 양력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음력을 모르는 자식들에게 매년 양력으로 바꾸어 알려주는 일도 번거롭다. 나 또한 음력을 잊고 살다 보니 달력에 표시한 기념일도 그냥 지나칠 때가 있다. 앞으로 나이도 출생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가끔은 내 나이도 잊어버리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자식들 나이도 제대로 알지 못할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래도 어쩌랴. 부딪치며 살 수밖에. 아픔의 강도가 두려우면 글 쓰는 공간, 시간 안에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나이는 내 힘으로 견디며 살아가야 할 나만의 숫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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