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개 두 마리가 진흙투성이 길바닥에서 사납게 싸우고 있었다. 서로 물어뜯어 몸 곳곳에서 피가 흘렀다. 그 정도면 그만 싸울 만도 하지만 싸움 강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한참 지나 검은색 개가 더 대응하지 못한 채 진흙탕에 머리를 처박고 움직이지 않자 싸움은 끝났다. 흰색 개는 승리감에 자축이라도 하듯 몇 번 목청껏 짓은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개싸움에는 규칙도 없고 시간제한도 없다. 더욱이 심판도 없다. 싸움은 한 마리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거나 죽으면 끝난다.

사자성어로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를 뜻하지만,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이익을 차지하려고 지저분하게 다투는 인간들'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이전투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후 정도전에게 조선 팔도 사자평(四字評)을 요구하자 정도전이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봄 물결에 던져진 돌멩이),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산속 숲에 사는 거친 호랑이) 등 칠도 평을 마쳤다.

이때까지 칠도 평은 각 도민의 성격과 지리적 특성을 긍정적이고 맛깔스럽게 빗대 이성계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마지막 이성계 고향 함경도의 평에서 문제가 생겼다. 함경도는 접경지대여서 이민족과 싸움이 잦은 편이다. 이런 지리 군사적 환경에 함경도 사람은 '진흙탕에서 끝까지 싸우는 개처럼' 악착을 떠는 성격을 지녔다. 정도전은 이런 특성에 착안해 함경도를 "이전투구"라 평했다. 갑자기 이성계의 얼굴에는 붉은색이 감돌았다. 무엇이라도 집어 던질 듯한 분노 감이 역력했다.

정도전이 누구인가? "국가도, 임금(대통령)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 "라는 명언을 남긴 사상가이자 이성계를 이용해 역성혁명을 일으킬 복안을 가지고 있던 혁명가다. 잽싸게 바꿨다. 소가 돌밭을 가는 우직함처럼 함경도민이 인내심이 강하고 부지런한 성격을 들어 '석전경우(石田耕牛:돌밭을 가는 소)'로 말이다. 이성계의 마음속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전투구는 요즘 한국 정치를 비유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전투구가 심판도 없고 규칙도 없어 마구잡이식 싸움처럼 우리 정치도 상식조차 넘어선 이해 불가능한 작태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칙이 난무하고 불법과 부조리가 판치고 선과 도덕이 실종됐다. 그들의 설전(舌戰)과 행동은 국격을 폄훼하고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정치가 아닌 개판이 맞다.

정치는 입법기관으로 국가 존립에 근간이 되는 사회구조다. 이 구조가 치명상을 입고 있는 셈이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다. 여당의 내홍은 참으로 가관이다. 펜덤(fandom)의 극단 정치에 의존하는 야당 대표는 몇 겁의 방탄조끼를 입었다. 여기에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싫든 좋든 차기 공천 확보를 위해 줄서기를 마쳤다. 사익을 위해 지조는 헌신짝이 됐다. 국민은 진영논리에 빠져 반목과 질시의 극한 대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정치 상황에서 변증법적 정치 발전이 기대되지만, 우리 정치는 불행하게도 아니다. 정(正:thesis)과 반(反:antithesis)이 안고 있는 모순(矛盾)의 대립은 합(合:synthesis)을 생성한다. 아쉽게도 합(合;synthesis)이 나오지 않는다. 여야 모두 모순된 정치 논리(모순율)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협치)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헤겔이 주장했던 'Aufheben'(지양:止揚)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시각적으로 기차 레일이 만나지만 절대 만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어촌에 한 어부가 열심히 게를 잡아 대나무 망태기에 넣고 있었다. 망태기 안에는 게들이 먼저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누런 의원 금배지를 단 정치인이 이를 보고 한마디 했다. "이러다가 잡은 게들이 모두 도망가면 어쩌려고 뚜껑을 덮지 않습니까?" "게들은 자기 몸 상하는 것보다 남 잘되는 것을 걱정해요. 한 놈이 망태기 밖으로 나가려 하면 다른 놈들이 힘을 합쳐 끌어내려 한 놈도 나갈 수 없지요. 그러니 뚜껑이 필요하겠소?" 어부는 한마디 더 했다. "게라는 놈은 말이지요. 하는 짓이 우리나라 정치인과 똑같지요." 이를 '크랩 멘탈리티 효과(Crab mentality effect)'라 한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다는 얘기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우리 정치에는 정치하는 인간들만 있지 그들에게 정치 권력을 위탁하는 국민은 없다. 더욱이 정치인들은 당내.외적 갈등을 겪으면서 적을 양산한다. 이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가 정치에 팽배하다. 국가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소실됐다. 우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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