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때를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제 길을 가고 있다.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단맛 들어가는 열매들이 있다. 나 역시 내가 지나온 길들과 내가 가려는 길의 시간을 물들이며 익어가는 중이다.

햇살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나뭇잎도 물기를 거두고 단풍 드는 중이다, 높아진 하늘만큼이나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가 헐렁해졌다. 나도 이제 느슨해질 나이가 되어 고향 집 뜨락에 섰다. 폴짝폴짝 뛰며 고무줄 하던 아이는 주름지고 근육이 빠지는 중이다.

한낮의 뜨락, 모과나무는 나무의 궤적이 보이는 듯하다. 모과 향 짙어지는 계절, 잘 익은 모과 빛 닮은 잎들 아래 민들레 몇 송이 낮게 피어있다. 이 가을 너무 싱싱해 보여 눈을 맞추었다. 어쩌자고 필 때를 한참 지난 시기에 피었는지, 애처롭다. 늘 무엇이든 느지막이 이루어지는 내 모습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나마 홀씨를 달고 있는 민들레는 괜찮다. 곧 바람결에 날아가 터를 잡아 내년 봄에 피어날 테니까. 힘들게 키운 자식들 떠나보낼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자식이라는 열매를 위해 온 힘을 보태었다. 자식들 튼실한 꽃 피우라고 헌신한 삶. 어머니는 어떤 향기로 낼 수 없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어릴 적 뜨락엔 채송화 민들레꽃들이 피고 지고, 마당은 늘 북적북적했다. 특히나 가을에는 밭작물 타작하는 소리가 그득했다. 들깨와 콩이 도리깨질에 열매 드러내고 수수 수확이 한창일 때면 마당은 절정을 이루고 수건을 뒤집어쓴 어머니는 쉴 틈이 없으셨던 시간 시간들.

어렸을 적 동토에 걸린 적이 있단다. 눈을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나를 이 병원 저 병원 데리고 다녀도 원인을 모른단다. 다만 증평에서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가면 치켜뜨던 눈을 감고 온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죽는구나 싶어 방에 눕혀두고 군불 지피는데 연기가 굴뚝으로 안 나가더란다. "아하, 얘가 굴뚝 동티 났구나" 생각이 들어 바꾼 굴뚝을 원상 복귀 해 놓고 음식을 해서 제를 올리니 그때서야 웃더라고…….

굴뚝 동티나서 죽다 살아났다는 말이 믿기진 않지만, 간혹 용돈이라도 드릴라치면 죽은 자식 살아 돌아온 듯 바라보며 웃으시던 어머님. 시들어가는 꽃을 살리려고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들판에는 자신들 세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한 식물들이 마지막 혼신을 다하듯 꽃을 피워 내는 시월이다. 내가 몇 번째 시월을 맞이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인생의 사계절에서 가을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리 내리기 전에 거둘 수 있는 수확이 있었으면 좋겠다. 추수 끝낸 빈 들판에서 푸르게 남아 속 꼭꼭 여물어가는 배추라도 되면 다행일까. 내 뜨락이 풍성하길 소망한다. 매 시간마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훈장처럼 몸은 아프고 매일 먹는 알약이 많아질지라도 뿌리 튼튼히 내리고 열매 풍성한 나무였음 좋겠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계절의 변화는 바람결에서도 알 수 있다. 바람도 계절의 결을 닮았다. 가을의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삶을 성찰하게 한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 시월의 뜨락일지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현재가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절정의 때는 따로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한 언제나 화양연화. 인생 후반의 화양연화는 더 짙고 화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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