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그 애가 거기 있었다. 빛바랜 앨범 속에서 그가 서운한 듯 바라본다. 내가 그를 기다리지 못한 자격지심일 것이다. 지인이 기록문화 일을 한다며 오래된 문서나 사진을 부탁해서 뒤져보다가 발견한 중학교 졸업앨범에서다.

그 당시는 중고등학교가 다 시험으로 선발해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상급학교 진학률과 수석을 어느 학교서 내느냐에 명예를 걸었다. 학교가 파하고도 공부 잘하는 몇 명을 남겨놓고 담임선생님께서 특별 지도를 하셨다. 끝나면 집 방향이 같은 담임선생님은 꼭 나를 업고 가시다가 집 앞에서 내려주셨다. 너무 따스하고 고마워서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시간 뺄셈을 덧셈으로 하는 바람에 여중 수석을 놓쳤다.내 인생 최초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전교 수석은 당연히 도비 장학생인데 이 삼등은 도 교육청에서 시험을 봐서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그 당시 우리는 여 중고가 같이 있어서 여중 삼등을 한 시원이와 여고 이 삼등 선배가 같이 가기로 했다. 서둘러 나가 기다리니 선배 아버님의 자가용이 멈춰서기에 얼른 탔다. 타고 보니 시원이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물론 전화도 없던 시절, 얼른 내려서 기다려야 했다. 열네 살 여자애는 처음 본 분의 자가용을 탄 데다 내성적이어서 그 애는 별도로 가겠지 생각하며 아무 조처를 하지 못했다. 다글다글 열린 매화꽃 바람 속에 기다리다가 차를 타니 설핏 잠까지 들었다. 시험이 끝나고도 그 애를 볼 수 없었지만, 청주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얻어먹고 자가용으로 귀가했다.

다녀와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지 못했다. 그 당시는 우열반으로 편성해서 삼 년 동안 사군자의 매(梅) 반 같은 반이었다. 나는 키가 중간이어서 34번이었고 그 애는 아주 커서 거의 80번에 가까웠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데 아슴푸레하다. 소도시여서 대개는 그 여고로 진학했는데 시원이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갔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제 생각하니 앨범의 그 사진도 진학을 포기한 서러운 마음이어서 표정이 굳어 있었으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방어기제가 강한 나는 이내 잊어버렸다. 진학이나 입학 시기에는 한 번쯤 생각하곤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앨범을 들춰본 적이 없었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말간 햇살이 삽상한 바람과 어깨동무하니 번개 모임을 하자고 한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은 습관적으로 운행하던 자가용을 세워 놓고 국화 향기 속을 걷고 싶다. 실은, 모임 장소가 얼마 전 내가 접촉 사고를 냈던 식당이어서 망설이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정차된 옆 차를 긁었다는 것을 내면의 아이가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나 보다. 이렇게 작은 실수도 트라우마가 남는데 늦어서 선발 시험을 보지 못하고 그 여파로 상급학교 진학도 못 한 그 애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때의 실수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안부가 너무 늦어 볼 수 없을지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초과근무수당도 없던 시절에 매일 방과 후 열성을 다하신 최달옥 선생님. 우리가 중학교 진학 후 서울로 전근 가셔서 고맙고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꼭 한번 뵙고 싶다. 철이 많이 들어서 죽기 전 무게가 제일 많이 나간다는 우스개를 하곤 하는데 이제 철이 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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