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오백칠십육 주년 한글날 기념식에 참석하느라고 버스를 탔다.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어딜 가는지 뒷좌석에 앉은 어린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한글날에도 태극기 다는 거 맞지? / 그럼, 오늘아침에도 엄마가 내걸었잖아. / 이렇게 비가 오는 데도 걸어야하나? / 국기가 비에 젖더라도 우리말과 글인 한글을 만들어서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해준 세종대왕에 대한 고마움과 잘 보존하여 오래오래 사용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니 꼭 달아야지.

엄마, 지난주엔 국군의 날과 개천절이 있었잖아? 같은 기념일인데 왜 국군의 날과 한글날은 날이라고 하고, 제헌절과 개천절은 절이라고 하는 거야?

나라의 경사스런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한 경축일을 국경일 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 있단다. 국경일 말고도 우리 국민들이 기념해야할 기념일도 많이 있는데, 기념일이 순 우리말로 된 이름 다음에는 설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한글날, 부처님과 예수님 오신 날, 유엔의 날처럼 날을 붙이고, 한자로 된 기념일 명칭에는 개천절(開天節)처럼 절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요즘은 성년의 날, 추석날, 식목일, 성탄절, 초파일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있단다.

엄마, 그런데 한글을 세종대왕이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훈민정음이라고 했다는데, 그럼 한글날이라고 하지 말고 훈민정음절(訓民正音節)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냐? / 그렇겠지? 그런데 약 백여 년 전쯤에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면서 한글날로 부르자고 제안하여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거란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한글의 원조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니? / 어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어. 글자도 처음엔 스물여덟 자였는데, 지금은 넉자가 없어지고 스물넉 자라는 것도 배웠어.

엄마, 그런데 훈민정음을 만들어서 국민들이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맞아? / 그런 사람도 있었단다. 그럼,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마지막으로 만들어 정리한 곳이 어딘 줄도 배웠겠구나. / 초정 약수터 아냐? / 그래, 그곳에 임시로 궁궐(行宮)을 짓고서 훈민정음을 완성했단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고장의 청주 초정에 대규모 기념관을 짓고, 다양한 훈민정음 관련 행사도 열릴 거란다. 그러면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과정도 잘 알 수 있겠지?

엄마는 세계에서 우리 한글을 사용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 지 알아? /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 대학에서 한국어를 선택하여 배우고 있는 나라는 무려 108개 나라가 있고, 한국어 반을 만들어 초?중?고등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나라는 스물여덟 나라나 된다고 했어요. / 그렇게나 많은 나라가 한글을 배워서 사용한다고? 우리말 한글 정말 대단하구나!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이 모녀의 대화에서 필자가 미처 모르는 것까지도 잘 알아서 설명을 하고 있는 어린이가 하도 기특해서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5학년이란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것을 누구한테 그렇게 자세하게 배웠느냐고 물으니 독서반을 지도하시는 도서관 선생님에게서 배웠단다. 한글날 기념식에 간다면서 한글에 대한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매일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한글에 대하여 고맙고 감사하다기에 앞서 송구하고 죄스런 마음이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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