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짝사랑이라도 좋으니까 나도 영화 같은 애틋한 사랑한 번 해봤으면 좋겠네."

언젠가 오십대 중반시절에 남편과 영화를 보고 나오며 한 말이다. 말을 하면서 속으로 아차 내가 누구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가 싶었다. 화를 낼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개그맨처럼 볼떼기 가득 바람을 넣고는 내 앞을 가로 막고 서서 "이 몸은 어떠신가요?" 하는데 정말 고마웠다. 내가 엄지 척을 하면서 "역시 오계자 짝이여!" 좋아하며 둘이서 웃어넘기는가보다 했는데 그이가 하는 말이 "당신은 그런 사랑 못해, 못할 성격이거든." 했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늘 내 영혼이 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가서 해거름에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친구들에게 집에 잘 계시는데 울긴 왜 우느냐고 질문을 하는 아이였다. 70령에 올라선지 한참 된 지금까지도 내 가슴엔 애틋한 그리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문득 대상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느낌, 그것이 무엇일까. 문학 쪽에서 대상도 없는 그리움이라는 게 이런것이구나 싶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오장환 문학제에서 "그리움의 나무 한그로씩 심으세요." 그리움도 용서도 자신이 겸허할 때 할 수 있다는 임승빈 교수님의 짧은 강론에서 혼란이 왔다. 그동안 나름대로 겸손하다고 생각했고 나를 낮추려고 노력한 것은 몸에 밴 일종의 예의범절일 뿐이었던가. 내가 그리움을 모를 정도로 겸허하지 못하고 속된 말로 잘난 채했다는 건가. 가까운 후배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 놓았더니 "아니죠, 오선샘은 자아가 강한 것입니다. '잘난 척' 하고는 질이 다릅니다." 이 말에 조금 위안은 되었지만 아무튼 내 영혼이 수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그리움의 나무 한 그루 심고 그 나무를 다독이며 꿈과 함께 키워야겠지만 간단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무가 아니라 고민이다. 어디 가서 잡아 올 나무도 아니다.

뒷골 절에서 새벽예불 종소리가 우우우웅 우우우웅 동살을 불러오는 시간에 무언가 고개를 내밀며 오묘한 기별이 오는 것 같았다. 늘 마음에 담아두고 영혼을 나누고 싶은 경이롭기까지 한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물상이 아니었다. 막연한 그리움이었다. 많은 세월을 먹고 나서 그 그리움은 내 꿈이 되었고 내 삶이 되었다.

내가 문인이라고 등단 할 때 "나는 문학과 재혼한 것입니다." 라고 했지 않은가. 성격상 절절하거나 애틋하지는 못해도 강한 집념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미 가슴에 문학이라는 사랑 나무 한그루 안고 있음이다. 잠시 한눈팔다가도 당신이 그리워 재바르게 고쳐 앉아 책을 들곤 하는 나다.

날이 새면서 가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움은 자신도 모르게 안개처럼 피어난다는 것을.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자만으로 가득한 사람에게는 그리움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어릴 적 엄마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이해 못한 것은 이미 그 때부터 내가 매사에 너무 이론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 남매들이 아버지를 닮아서 작은 일에도 이론적인 기질이 짙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말했구나 싶다.

오계자 소설가
오계자 소설가

그리움의 나무는 이미 내 가슴 속 뜰에 자리 잡고 있는 줄 몰랐다. 내 마음에 흡족할 수 있는 글 하나 낳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나 스스로가 흡족한 글,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것이 내 가슴에 자리 잡은 그리움의 나무다. 나무만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잖은가. 이 나무에 영글어갈 열매를 위해 붓을 들고, 대금을 연주하며 열심히 강의실을 찾기도 하고 여행을 많이 한다. 그리움 나무에 튼실한 열매를 위해 벌 나비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출근하듯 도서관에 가는 것도 그 열매를 위한 몸짓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믿는다 노력하는 만큼은 이루리라 믿는다. 내가 흡족할 얄매를 스스로 기약하면서 오늘도 새벽범종의 맥놀이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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