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충북도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중부매일DB
충북도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중부매일DB

최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친야권 성향의 온라인 매체들에 의해 공개되었다. 한 매체 측은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 하는 길"이라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문제는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명단 공개가 순수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목적이 있느냐다. 정략 등 다른 목적이 없느냐 말이다. 명단 공개는 유가족 동의하에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주장과 맞물려 더 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명단 공개로 인한 논란이 일자 공개가 부적절하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태원 참사는 더 듣기도 보기도 싫고, 국민 모두 가슴 아파하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트라우마가 이어질 일대 사건이다. 명단 공개는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와 권리 침해가 우려된다. 이럼에도 왜 희생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하려는 것일까?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은 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학살 지휘자 아이히만 재판 과정을 담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악(惡)'은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의지나 나쁜 행위다. '惡'은 '버금 아(亞)'와 '마음 심(心)'의 합성어다. '亞'는 사면으로 둘러싼 규모가 큰 집이지만, 궁궐만큼은 아니어서 '궁궐 다음의', '궁궐에 버금가는'의 뜻을 지닌다. '亞'는 위에서 내려다본 무덤의 모양이기도 하다. 사방이 꽉 막힌 집 혹은 무덤에 마음이 갇힌 형국이다. 이런 공간에서의 심성이 곱거나 선할 수 없다. 악할 수밖에 없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우리 사회에 악이 편재(Ubiquitous)한다. 곳곳에 도사리며 평범하게, 아니 보란 듯이 활개 친다. 어떤 사람들은 악이 악인 줄도 모른 채 죄의식 없이 악을 행한다. 악행은 악당이나 범죄인보다 국가나 사회에 잘 적응하고 복종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기 일쑤다. 악행의 조건만 조성된다면 누구든 악의 집행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계는 '악의 평범성'이 '쑥쑥' 자라는 온상이다. 정치인들 스스로 악행을 서슴지 않음이 맞다. 정략에 필요하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회악을 저지르고 있다. 사생결단으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9차례)에서 '악의 평범성'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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