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법정>

'부패(腐敗)'는 단백질이나 지방 등의 유기물이 미생물 작용으로 분해되는 과정이다. 독특한 냄새가 나거나 유독성 물질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썩는 현상'이다. 인간 부패는 정치, 사상, 의식 등의 타락이다. 특히 공적 권력 남용에서 비롯된 부패는 범죄다. 전자는 'putrefaction', 후자는 'corruption'이다.

'발효(醱酵:fermentation)'는 효모나 세균 등 미생물이 유기화합물을 분해해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탄소 등을 발생시키는 작용이다. 좁은 뜻으로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작용을 이른다. 된장, 고추장, 식초, 김치, 곡주(穀酒) 등이 그 결과물이다. 인간 발효는 오랜 수양과 경험 등으로 얻은 지혜나 겸양지덕이다.

부패이건 발효이건 유기물이 세균에 의해 분해되어 원래의 성질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차이는 변한 성질이 음식과 인간에 유익하냐 아니냐다. 유익하면 발효이고, 해(害)가 되면 부패다. 발효가 잘 못 되면 부패고, 잘 되면 숙성인 셈이다.

부패나 발효는 시간이 필요하다. 발효는 더 그러하다. 발효 시간은 '나이 먹기'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더 추하고 악해지는 사람이 있고 지혜로워지는 사람이 있다. 겸양지덕을 갖춰 지혜로운 사람이 바로 발효 인간이다. 사회악에 오염돼 부조리 덩어리인 사람이 부패 인간이다.

발효 인간 되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방해꾼이 많고 발효 기반이 부실하다는 점에서다. 부지불식간에 무한경쟁에 휘말리고 곳곳에 악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경쟁에서 뒤지거나 악과 유혹에 현혹되면 발효가 아닌 부패하기 일쑤다. 부패 인간은 사회의 암적 존재이며 독버섯으로 자신은 물론 사회를 병들게 한다.

발효 인간은 언행이 남다르고 심지가 굳다. 말만 앞세우지 않는 언행일치(言行一致)다. '지혜로운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자는 지혜롭지 못 하다(知者無言 言者無知: 老子.<道德經>).'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비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시기하지 않는다. 배려와 상생을 추구한다. 정보나 지식보다 지혜가 풍부하다. 요즘 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멘토(Mentor)다.

언제부턴가 발효 인간을 찾기 힘들다. 백조는 평생 두 번 무릎을 꺾는다. 부화할 때와 죽을 때다. 미물(微物)에 불과하지만, 인간들이 한 번 정도 곱씹을 만하다. 불의와 타협하기 잦고 자기중심적 본성을 드러내기 이여반장(易如反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발효되지 않은 삶을 이어왔다. 아니 발효되기 전에 발효된 양 나서기 일쑤였다.

나이 '60'을 '이순(耳順)', '70'일 '고희(古稀)'.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그만큼 지혜로워진다는 의미이다. 노인(老人)은 원래 '머리를 길게 기르고 신을 모시는 특권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이를 기반으로 '젊은이를 초월한 해탈과 성숙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노인이라 일컫는다. 성숙(成熟)과 발효의 유사어 숙성(熟成)은 순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말이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육십갑자(六十甲子)를 넘긴 자들이여! 젊은 세대의 모범이 될 만큼 발효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노련(老鍊)과 노수(老手)'라 자부하는가? 그냥 인생의 쇠락과 추함의 늙은이로 자처하는가? 고려 시대 우탁(禹倬)처럼 가시로 막고 막대로 내리쳐도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는 '백발과 늙은 길'만 탓하고 있지나 않은지? 3년 묵은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겉절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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