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설 명절 때 꼭 사는 과일이 있다. 사과(沙果)이고 괴산군 산막이옛길 가게에서 산다. 괴산호 옆 야트막한 산에서 생산된 사과로 그 품질이 지금까지 먹어 본 여느 사과에 뒤지지 않는다. 택배도 불가하고 시중에서도 살 수 없다. 재배 농민이 직접 산막이옛길에서만 판다. 그만큼 품질이 뛰어난 데다 수량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가 올해는 판매에 흥이 없어 보였다. 과거 그러하지 않았던 아주머니가 왜 그랬을까? 사과 품질이 갈수록 떨어져 단골에게 선뜻 사과 팔기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사과를 맛볼 수 없게 됐어요. 이미 오래된 사과나무 일부를 베어버렸어요." "아니 왜요. 그 맛있는 사과인데, 묘목을 다시 심으려고요? 아니면 치료가 불가하고 방제약이 없는 과수화상병에 걸렸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사과가 맛이 갈수록 시원찮아요. 사과나무 생육이 부진하고 당도가 떨어지고 과질도 푸석푸석해져요. 기후 때문인 것 같아요. 날씨가 갈수록 더워져… 맛이 떨어지니 팔기가 좀 그래요."

아주머니는 변화된 기온과 일교차를 잘 모른다. 단지 사과 품질 하락의 원인을 기후변화라고 짐작할 뿐이다. 몇 년 전부터 갈수록 일교차가 줄어들고 날씨가 더워지더니 사과 맛도 덩달아 떨어졌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예전 맛을 따라갈 수 없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 지구의 평균 기온이 변화는 현상이다. 그 변화는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후는 물론 가속화되는 온난화를 뜻한다. 날씨가 점점 더워져 사과 생육에 부적합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과하면 대구였는데, 대구에서 사과가 사라진 지 오래다. 경북 청송, 문경을 거쳐 충주, 제천, 단양 등으로 사과 재배단지가 이동했다. 아열대 기후대를 피해 끊임없이 북상하는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6대 과일의 지배지 변동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사과의 경우 앞으로 재배 적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강원 이남에서 재배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특히 아열대 기후대가 2030년에 18.2%, 2050년에는 55.9%로 확대되고 21세기 말에는 지금보다 평균 5.7% 온도상승을 전망했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온도 상승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온도상승으로 사과재배의 최적 일교차인 13도 안팎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뭐 사과하나 가지고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비난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그리 비난할 게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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