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시민(citizen)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시달리고 있다. 눈 감고 귀 막고 싶은 정도다. 곤궁해진 살림살이 때문일까?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부러지거나 제거돼 정체 혹은 퇴보하는 삶 때문일까? 폭염, 혹한, 산불, 지진, 오염 등 이상 기후 때문일까? 인간성과 주체성 상실 때문일까?

'시달린다.'는 '무엇에 괴로움이나 성가심을 당한다.'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되었다. BC 6C 인도 마가다 왕국에는 시체를 버리는 '조장(鳥葬:시체를 들에 내놓아 새가 쪼아 먹게 하는 장례법)지'란 숲이 있었다. 인도인들은 이를 '시타바나(Sitavana)'라 불렀다. 'Sita'는 시체, 'Vana'는 숲이다. '시타바나'가 중국으로 전래하면서, 중국은 'Vana' 대신 '林'을 사용해 '스투어린(尸陀林)'이라 했다. 한국은 한자어로 '시타림'이라 불렀다.

인도 스님들은 수행의 하나로 시타림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오감이 어떠했을까. 흉물스러운 시체를 눈 뜨고 볼 수 없었고, 악취로 입과 코로 숨 쉴 수 없었다. 새가 먹다 남긴 뼈다귀 등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고, 자칫 질병에 걸리기도 했다. '시타림'은 고행과 괴로움의 상징이었다. 이 '시타림'이 '시달림'으로 소리가 변하면서 인도의 수행 스님처럼 무척이나 고생스럽고 성가신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는 '시달린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오래전 '시타림'에서 헤매고 있다. 정치에 고통과 성가심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정치를 좀 먹는 '반목과 질시의 정치'가 변함없이 판치고 있는 데다 위정자들이 권력을 집단으로 마구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민의 권력임을 망각한 채 말이다. 고삐 풀려 날뛰는 망아지와 다르지 않다. 양당 갈등과 대립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특히 여야가 포퓰리즘에 눈멀어 나라를 나락으로 몰아넣기 대회를 치르고 있다.

시민들을 시달리게 하는 정치는 한둘이 아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은 체포동의안 부결에 힘입어 재판 과정에서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측근이나 주변인 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말이다. 본인 의지도 의지지만, 팬덤 정치의 본보기인 '개딸'과 공천에 목매는 의원들의 지지 또한 그가 의지를 굽히지 않는 기반이다. 전쟁 상황도 아닌데 몇 겹의 '방탄(防彈)' 조끼를 걸치고 유례없는 '방탄 국회'를 만들며 쪽수를 과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의 외침과 시민들의 시달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이다. 정부는 검찰 출신들로 철옹성을 쌓고 있다. 위계 서열이 확고한 검찰은 그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해도 그 위계 서열과 위력에는 빈틈이 없다. 전 정부 운동권출신공화국에서 검찰공화국으로 변신이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을 쪽수로 통과시켰다. 대통령은 보란 듯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재의결을 시도했지만 부결됐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방송법, 노란봉투법, 간호법 등도 통과시킬 태세다. 하지만 대통령은 시민이나 야당과 대화 없이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시달림을 유발하는 양당 간의 대립은 현수막에서도 드러난다. 그 내용은 여야 간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다. 눈이 고통스럽다. 온통 정치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게 나라인가? 이러려고 정치인들은 지난해 지자체장 허가 없이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했는가? 정치인은 참으로 속 보이는 일차원적 동물이다.

여야 간 배려와 상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오기(傲氣)의 정치다. 헤겔의 변증법을 무색하게 한다. 극한 대립이 일상적이지만, 합을 창출하지 못한다.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짜증이며 스트레스며 알레르기 반응이다. 경제난도, 남북한 대치도 이만저만 아닌데 정치마저 골머리를 썩이니 삶의 질이 최악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꼴이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정치는 이미 '시타림'이 되었고, 정치인들은 '시타림'의 영역을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정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시부(媤父), 남편, 아들이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한 산속 여인이 그래도 산속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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