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임선빈 / 수필가

입춘추위가 어느 해보다도 매서운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저에게는 누이가 한 분 계십니다. 육순이 넘어 할머니가 된 누이. 고생을 많이 하신 탓에 나이보다 더 늙게 보이지만 그런 누이의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만큼 제게 누이는 각별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면서 3남1녀를 혼자서 키우셨는데 집안 일은 누이의 몫이 되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보리쌀을 삶아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배가 등 짝에 붙을 정도로 허기졌던 전 보리밥을 아주 조금 먹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입에 붙은 맛은 자꾸만 저를 잡아 당겼습니다. 한 숟갈만, 딱 한 숟갈만 더 먹고 그만 먹어야지, 하면서 숟갈을 놓지 못했습니다.

행상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식구들의 저녁밥을 혼자서 먹어 치운 제게 매질을 했습니다. 그때 누이는 저를 감싸며 그 고초를 대신 겪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같은 누이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순전히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꼬박꼬박 누이가 보내오는 돈을 모아 상급학교를 갈 수 있었고, 꽁보리밥이었지만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누이가 보낸 것은 그냥 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형제들을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누이는 돈을 아끼려고 한겨울에도 온기가 없는 냉방에서 지냈습니다. 이처럼 누이는 당신보다 동생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신 누이가 전 재산을 사업이 어려운 저를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그 누이가 지금 투병 중에 계십니다. 병상에 누워서도 동생의 사업을 걱정하는 누이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받기만 했고 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그 이상의 사랑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누이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내온 편지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사랑이 많은 기적을 낳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사랑을 신성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사랑의 기적은 누군가의 헌신적인 희생을 반드시 수반하게 된다.

‘몽실언니’도 그 중 하나이다. 몽실언니는 질곡의 현대사를 살면서도 씩씩하였고 최악의 상황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이런 불평등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도 한몫 거들게 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랑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몽실언니는 온갖 어려움도 꿋꿋하게 헤쳐나간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절대 빈곤시대였던 60∼70년대 또 다른 몽실언니들이 구로공단이나 마산수출자유지역으로, 때로는 가사도우미로 나섰다.

이시기 제 1·2차 경제개발경제5개년계획으로 후진국 특유의 절대적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되는 고도의 경제성장률 이면에는 양질의 값싼 노동력이 되었던 몽실언니가 있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태워서 희망의 빛이 되었던 몽실언니들이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 고단한 삶이 안식에 든다 해도 ‘몽실언니’의 모성애적 사랑은 세상을 오래오래 따사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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