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임수덕 / 청주KYC 대표

기적을 보셨습니까? 참여와 나눔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몇 년 전 시민단체 주관으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30대 중반의 한 여성 장애인과 연결이 되어 주 1회씩 집으로 방문하여 컴퓨터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고 컴퓨터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어 자판과 특수키 사용법, 동시에 두 개의 키를 누르는 효과를 내는 방법 등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필요할 때 조카에게 의존하여 인터넷을 접하던 그는 직접 자판을 입력하는 방법을 배우고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그는 제가 방문하고 돌아가면 일주일 동안 컴퓨터 연습에 열심이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하는 방법, 메일 주고받는 방법 등을 가르쳐드리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 지나자 저에게 음악이 담긴 멋진 메일을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각종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왕성한 사이버 활동을 하여 저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강력한 도구를 얻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세상과 어울리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몇 번 되지도 않은 컴퓨터 기초 교육만으로도 그는 사람들과 그토록 원했던 대화를 인터넷에서 비장애인보다도 더 활발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하는 인터넷 사용법 지식과 일주일에 한두 시간의 투자만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과 자신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저에게 이 일은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호기심과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몇 주 지나자 웹페이지 소스를 복사하여 자신의 메일에 활용하는 등 여러 기능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스스로 배워갔고, 저는 가끔씩 질문에 답변하는 정도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후 만남의 시간은 주로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삶을 접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살아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속적으로 훨씬 더 나은 조건에 있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은 내가 가진 것을 베풀어주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행복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행복한 느낌을 갖는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의 만남은 행복이 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그에게 바깥바람 쐬어주러 대청댐으로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너무나 좋아하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설아동들과 소풍가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도 하였습니다. 저는 운전만 하면 되었습니다. 연말에 그는 일부러 저를 불렀습니다. 여러달 모아 동전이 꽉 찬 돼지저금통을 내어놓으며 함께 했던 아동이 다음 해 입학한다니 학용품이라도 사서 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인터넷으로 장기기증 서약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메일을 보내지 못합니다. 외출도 하지 못합니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마음 쓰는 것은, 평생을 딸을 위해 정성을 쏟아온 나이 드신 그의 어머니가 약값과 생활비 마련에 힘들어하시며 건강이 나빠져 가는 것입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시민들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작은 나눔이 이 멋진 친구가 다시 한번 힘차게 일어서게 할 것이라는 것을.

▶ 임수덕 대표는

청주KYC 창립에 참여했으며 2002년부터는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참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자원활동에 관심이 많다.충북대와 청주대,서원대 등 충북지역 대학에 통계학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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